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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41]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경감시 커넥션’ (200113/주간경향 1360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검증… 미-멕시코 국경에서 활용



미국 남부 애리조나주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 ‘토호노 오덤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크기는 남한의 7분의 1 정도이며, 코네티컷주보다 조금 작다. 거주자는 1만 명이 안 된다. 별 관심이 없던 이곳이 최근 몇 년 동안 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불법이민 단속을 위한 통합감시탑(IFT) 건설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2019년 6월 각종 첨단 감시장비를 갖춘 IFT 10개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주민들은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의 감시망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높이가 약 50m인 IFT는 야간에도 식별이 가능한 고해상 카메라와 열감지 센서, 지상 레이더와 지휘통제센터를 갖추고 있다. 반경 약 12㎞ 안의 사람이나 자동차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이미 애리조나주 남부 국경지역에는 55개에 설치돼 있다. 추가로 미 전역에 50여 개가 설치될 예정이다.

IFT를 설치하는 기업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방산업체 ‘엘빗 시스템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자국의 감시기술을 미국에 수출하게 됐을까. 여기엔 두 나라의 특수관계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실전으로 검증한 감시기술에 답이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미국의 경제·군사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8위의 무기수출국(2018년)으로 성장했다. 이 지원에 기반을 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효율적으로 통제·감시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미국은 이 기술을 받아들여 미-멕시코 국경지역에서 불법이민을 막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 시스템즈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설치한 통합감시탑(IFT).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은 불법이민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애리조나주에 이미 55개를 설치했으며, 미 전역에 추가로 50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엘빗 시스템즈 웹사이트

감시기술 실험실이 된 미-멕시코 국경

“미국의 국경지역은 불법이민을 막는다는 명목 아래 새로운 법 집행과 통제 체계의 ‘실험실’이 돼가고 있다.”

2019년 8월 말 <인터셉트>가 토호노 오덤 보호구역에 설치될 IFT를 다룬 기사에 나오는 문구다. 이처럼 토호노 오덤 보호구역에 설치될 IFT는 미 국경지역에서 강화되는 불법이민 단속과 감시기술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엘빗 시스템즈의 자회사인 엘빗 시스템즈 아메리카는 이미 애리조나주 남부 국경에 IFT 55개를 설치해 직선으로 320㎞ 지역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다. CBPRVSS라고 불리는 소형 감시탑 368개를 미-멕시코 국경뿐만 아니라 미-캐나다 국경에 이미 설치했다. 미 의회는 2019년 2월 IFT와 이동감시시스템 도입 예산 1억 달러를 승인했다. 이는 IFT가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될 것임을 시사한다. 엘빗 시스템즈도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가 미 국경 전체에 전자감시장비를 설치하는 것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엘빗 시스템즈 아메리카의 바비 브라운은 “우리는 북쪽 국경뿐만 아니라 항구와 항만에도 전자감시장비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 국경지역이 감시기술의 실험실이 된 것은 ‘국경의 무장화’와 관련이 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다루는 미 매체 <일렉트로닉 인티파다>에 따르면 국경지역에서 불법이민 단속을 위해 하늘과 땅에서 첨단기술장비를 활용하는 국경의 무장화는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전임자들처럼 국경지대 안보강화 정책을 확대하는 동시에 이민자들이 도시로부터 더 멀리 떨어지고 지리적으로 힘든 지역을 둘러 오게 만드는 ‘저지 전략’을 도입했다. 이 전략은 1986년 이민개혁통제법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공격적인 변화다. 이 전략 도입으로 “애리조나주는 킬링 필드가 됐다”(언론인 마거릿 리건)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경의 무장화는 결국 방산업체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노다지가 됐다. 미 하와이대에서 국경과 이민에 대해 연구하는 리스 존스 교수는 “2001년 9·11에 이은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자금이 전 세계의 국경안보 부문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인터셉트>에 밝혔다.

IFT 건립에 앞서 미-멕시코 국경지역에 도입된 이스라엘의 감시기술은 드론이다. CBP는 2004년 초 엘빗 시스템즈가 개발한 헤르메스 드론을 도입해 배치했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세계 최대 드론 수출국이다. 2005년 15억 달러였던 드론 수출액은 2012년 46억 달러로 증가했다. 절반은 유럽으로, 3분의 1은 아시아로 수출됐다. 미국은 현재 자체 제작한 프레데터 B 드론을 국경에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제이 스탠리는 “경찰이 사람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얼마나 모을 것인가에 대한 제한을 없애기 때문에 감시기술의 확산이 특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CBP가 관할하는 지역은 해안선을 포함한 국경으로부터 100마일(160㎞) 안쪽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미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CBP의 감시망 아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 시스템즈 로고.

엘빗 시스템즈 최대 경쟁력은 ‘실전 경험’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이 미 국경단속 관련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시기는 9·11 이후다. 그 이후 국경단속을 강화한 미국은 10년간 10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기간 세계에서 6번째 무기수출국으로 성장한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미국의 이민단속 강화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실전으로 증명된 군사기술을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가운데 엘빗 시스템즈는 진보 성향의 국제싱크탱크 ‘트랜스내셔널 인스티튜트(TNI)’가 지난해 9월 16일 펴낸 ‘장벽 그 이상’ 보고서에서 CBP가 계약을 체결한 14개 방산업체 및 소프트웨어 기업 가운데 이스라엘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2004년 엘빗 시스템즈의 드론 도입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은 미 국토안보부로부터 크고 작은 계약을 따냈다. NICE 시스템즈는 애리조나주 불법이민자 수용시설에 CCTV 카메라를 공급했다. 골란그룹은 2008년부터 국토안보부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에게 육박전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 등을 가르쳤다. 2019년 8월 이스라엘이 어떻게 미 국경 이민단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다룬 <국경의 제국(Empire of Borders)>을 쓴 언론인 토드 밀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법집행교환프로그램(LEEP) 등을 통해 대터러 및 국경안보에 관한 훈련을 받은 국토안보부 산하 직원은 1만1000여 명이나 됐다.

엘빗 시스템즈가 CBPIFT 계약을 맺은 때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4년 2월이다. 계약 규모는 1억4500만 달러다. 미 의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27일 국경 장벽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하기 11년 전인 2006년 700마일에 걸친 장벽 건설을 승인한 바 있다. SBINet으로 알려진 이 계획의 핵심은 1억 달러 이상 소요되는 비용 때문에 5년 뒤 취소됐다. 이후 체결된 것이 IFT 계약이었다.

엘빗 시스템즈가 내세우는 가장 큰 경쟁력은 현장에서 증명된 상품이라는 점이다. 엘빗 시스템즈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국제법상 불법이어서 철거해야 한다고 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가자지구, 레바논 및 시리아 국경의 보안장벽에 감시 센서를 설치해 활용하는 등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 또 2015년에 개발한 터널 탐지기술은 2017년 시작된 가자지구 지하 40m에 건설 중인 지하장벽에 활용되고 있다. 엘빗 시스템즈의 드론은 유럽연합(EU)의 요구에 따라 북아프리카에서 오는 난민 봉쇄를 위해 지중해를 감시하고 있으며, 호주·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국가의 군대에 이 기술을 제공해왔다. 엘빗 시스템즈가 미-멕시코 국경 계약을 두고 경쟁을 할 때 내건 광고는 “1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국경을 안전하게 지켰고, 이는 증명된 실적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엘빗 시스템즈 아메리카는 2019년 4월 초 애리조나주 제품 시험장에서 최신 국경감시 제품을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TORCH로 알려진 IFT 지휘통제센터에 대한 라이브 시범이 최대 관심이었다. TORCH는 엘빗 시스템즈가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국경과 분리장벽에서 사람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개발했다. 애리조나주 국경순찰대는 이를 도입해 활용 중이다. <인터셉트>는 “엘빗 시스템즈에게 국경감시라는 성배는 어느 누구도 주어진 장소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들을 추적하는 TORCH의 추적 능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빗 시스템즈는 또 IFT에서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고, 약 10㎞까지 볼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한 자동 트럭을 개발해 2016년 세계 최초로 국경에 배치한 바 있다. 회사 측은 CBP에 이 트럭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루살렘(왼쪽)과 팔레스타인 정착촌을 갈라놓은 이스라엘 보안장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 이스라엘 국경 통제 성공 비법 전수

이스라엘의 국경 통제 기술은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이집트 국경에 설치한 장벽은 유입 이민자수를 ‘0’으로 만들었으며, 자살폭탄 테러 방지를 위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보안장벽은 자살폭탄 테러 발생 건수를 현격히 줄였다. 이 같은 성공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 방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이스라엘에 수용된 불법이민자와 난민은 약 4만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2006년부터 2012년에 입국했다. 가장 많을 때인 2010년에는 매달 1500명이 들어왔다. 이스라엘은 2013년 12월 말 이집트 국경에 242㎞에 이르는 장벽을 완성했다. 국경 장벽 건설의 효과는 컸다. 2012년 상반기 9500명에 달하던 불법이민자는 2013년 상반기에 30여 명으로 줄어들었고, 2016년에는 11명으로 급감하더니 2017년에는 0명이 됐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설치한 보안장벽은 빈발하던 자살폭탄 테러를 줄이는 데 효과를 거뒀다. 700㎞가 넘는 보안장벽은 2000~2003년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주민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 기간에 건설됐다. 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주민에 의한 자살폭탄 테러는 70건이 넘었으며, 약 300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했다. 보안장벽 건설 후 2003년 8월부터 2006년까지 테러 건수는 12건으로 줄었다. 이 같은 성공 덕분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 방산업체 IAI 계열사인 엘타 노스 아메리카를 미-멕시코 국경에 설치할 국경 시제품 출품 8개 회사의 하나로 선정했다.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자지구는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지난해 8월 <국경의 제국>을 출간한 언론인 토드 밀러가 2012년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열린 국경기술컨퍼런스에 참가한 IDF 로이에 엘카베츠 소장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밀러는 “실험실이라는 용어가 미-멕시코 국경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것을 들었다”면서 “마치 국경지역의 이민자들이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위협적인 존재들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안보 현미경 아래에 있는 견본처럼 여겨졌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헤르메스 드론을 어린이를 비롯해 많은 팔레스타인이 사망한 가자지구 공격 때 실전 테스트했다고 영국의 자선단체 ‘워 온 원트’이 2013년에 밝힌 바 있다.

밀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오랜 특별 관계를 고려하면 팔레스타인-멕시코 국경의 두 실험실 사이의 시너지 효과는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 건국 1년 뒤인 1949년 1억 달러 수출입차관 제공을 시작으로 모두 134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이 가운데 군 장비와 무기가 950억 달러나 됐다. 국토안보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멕시코 국경지역은 이스라엘 못지않게 국경안보 산업체가 밀집된 지역이 됐다는 게 밀러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