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3일 출간될 회고록에는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부터 2019년 6·30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등 북핵 협상과 관련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의 민감한 움직임들이 담겨 있다. 일방적인 주장이지만 파장을 생각하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22일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 간 협의를 왜곡했다고 비판한 것은 당연하다.
회고록의 내용은 북핵 협상을 둘러싼 미국 외교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미 협상을 이벤트로 접근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의 부적절한 견제 등이 망라돼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몰이해는 실망스럽다. 트럼프는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로 수차례 협박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이것은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면서 어떻게 동맹을 언급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볼턴 자신의 역할이다. 그는 지난해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후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을 ‘사진찍기용’이라고 비판했다. 남북 분단의 상징적 장소에서 70년 적대국의 정상들이 만나는 역사적 행사를 폄훼했다. 볼턴은 북·미 비핵화 외교를 “한국의 창조물”이라며 “김 위원장이나 우리 쪽에 관한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에 더 많이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비핵화의 당사자인 한국의 역할을 부정한 것이다. 나아가 볼턴은 트럼프의 싱가포르 회담 결정도 “어리석은 실수”라며 북·미 협상이 깨지기를 바랐다고 썼다. 실제 그는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라는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강요해 회담을 방해했다. 북·미는 오랜 적대를 해소해야 하는 사이이며, 국교 정상화는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 그런데 미 대통령의 안보 정책을 보좌하는 최측근 참모가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역사적인 회담을 반대하면서 방해했다니 어이가 없다. 이러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등 북핵 협상이 진전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볼턴 회고록은 미국에 대한 관계국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회고록에 기술된 미국의 태도가 사실이라면 향후 남북, 북·미관계 복원은 어려워진다. 한·미 양국 간 안보 협력 노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북핵 협상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향후 협상의 신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것을 미 정부는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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