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쿠바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1926~2016) 생전에 그를 상대로 638차례나 암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중엔 독극물 활용도 포함돼 있었다. ‘박테리아 독약’을 그의 손수건이나 마시는 커피 속에 넣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미 중앙정보국(CIA) 실험과정에서 독약이 분해되는 바람에 이 방법은 채택되지 않았다. 2017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독극물에 의해 암살됐다. 화학무기로 개발된 신경작용제 VX로, 1997년 발효한 화학무기금지조약 대상 물질이다. 하지만 VX의 첫 희생자가 김정남은 아니다. 1994~1995년 사린 가스 테러로 일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이비 종교집단 옴진리교가 인명 살상 목적으로 살포한 바 있다.
2018년 3월 영국 솔즈베리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간첩 부녀 독살 미수 사건은 새 독가스의 등장을 알렸다. 노비촉(Novichok)이었다. 당시 영국 경찰은 러시아 암살요원들이 부녀가 사는 집 근처에서 노비촉을 살포했다고 밝혔다. 그해 6월엔 영국 에임즈버리에서 40대 남녀가 노비촉에 노출돼 여성이 사망했다. 두 사건으로 노비촉이 유명해졌지만, 러 보안기관은 1995년 은행가와 비서를 독살하는 데 이를 사용한 바 있다.
노비촉은 냉전의 산물이다. 러시아는 미 화학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1970년대 초~1990년대 초 이를 개발했다. 미국의 VX보다 독성이 최대 10배 강하다.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중독된다. 30초~2분이면 근육경련을 유발해 심장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노비촉은 이원화 화학무기(binary weapons)다. 별도 용기에 넣은 무해한 두 종의 화학물질을 결합시키면 그 화학 반응으로 치명적인 신경가스가 발생한다. 농업용 화학물질 제조에 합법적으로 쓰는 유기인산화합물이 그중 하나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에야 화학무기금지조약 규제 대상 명단에 올랐다.
지난달 20일 시베리아를 출발해 모스크바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차를 마시고 쓰러진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빌니에게서 노비촉이 검출됐다고 한다.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지 않을 수 없다. 희대의 독극물 사건에 떠는 이는 비단 정적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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