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새벽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대남 유화 메시지를 함께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기념 연설에서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그 누구를 겨냥해서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게 아니다. 우리의 전쟁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남한을 향해서는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라고 지칭하며 “하루빨리 (코로나19)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대남, 대미 비난 대신 유화적 메시지로 대외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것은 북한의 처지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조처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수해·홍수에 따른 ‘3중고’를 겪고 있다. 김 위원장이 30분간의 육성연설 내내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피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도 눈길이 간다.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은 전환기적 시점에 불필요한 자극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한 것이어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북한이 ‘심야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는 우려스럽다. 신형 ICBM은 외관상 기존 ‘화성 15형’보다 길이·직경이 커지고 다탄두 장착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형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대선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따라 시험발사나 실물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미 행정부 고위 관리가 실망을 표할 정도로 미국으로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에서도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은 최대 걸림돌이다. 북한은 남북 군사합의 준수를 촉구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무겁게 헤아리기 바란다.
열병식에서 코로나19 종식 후 남북관계 복원을 시사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발언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지난 6월 대남 군사행동 보류와 지난달 민간인 피살사건 사과에 이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11일 북 열병식을 분석하는 NSC 회의를 열고 남북 교류협력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남북관계는 서해에서의 민간인 피격 사망 사건이 터지고 군통신선도 막혀 있는 교착 국면에 머물고 있다. 하나하나 현안부터 풀어가며 북한이 손 내밀 때를 철저히 대비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도 당연히 남북관계가 풀려야 힘이 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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