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가 80%의 부를 가져간다는 ‘80 대 20 법칙’이 있다. 그처럼 보건 분야에도 불평등을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90 대 10 격차’다. 세계의 90%가 감염병 위험에 처해 있지만, 정작 세계 의약품의 90% 이상은 인구의 10%에만 공급된다는 의미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백신은 부자 나라의 몫이었다. 지난 3월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이후 이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국제사회가 손을 맞잡았다. 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를 추진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주도해 2021년까지 ‘참여국 인구 20% 접종’을 목표로 백신 생산·분배에 협력하자는 프로젝트다. 지난 4월 시작돼 10월 말 현재 18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WHO가 강조하는 ‘백신=공공재’의 현실화 방안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코백스에 참여한 일부 부자 나라들이 몇 달 전부터 백신 입도선매에 나서 눈총을 샀다. 최근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 중인 백신 예방효과가 95%에 이른다는 발표 후 백신 사재기 쟁탈전은 더 치열하다. 화이자와 함께 백신을 개발 중인 바이오엔테크는 지난 20일 미 식품의약국(FDA)에 긴급사용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백신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화이자의 백신 물량 대부분이 미국, 영국, 일본 등에 팔렸다”고 밝혔다. 그 물량은 내년까지 공급할 예정인 14억회 투여분의 90%에 이른다고 한다. 내년까지 5억~10억회분을 공급할 예정인 모더나 백신도 미국이 5억회분을 확보했다고 한다. 미 듀크대 연구센터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백신 가운데 64억회 투여분이 이미 팔렸고, 32억회 투여분은 구매 협상이 진행 중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지난 21일 개막한 화상 정상회의에서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전날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들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채택했다. 앞에서는 협력을 말하면서 뒤로는 백신 사재기에 여념 없는 선진국의 언행불일치 탓에 정상들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린다. 선진국의 백신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한 코로나와의 싸움은 길어지고 패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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