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화랑유원지, 진도 팽목항, 서울 광화문광장, 목포신항…. 세월호 참사의 기억들이 새겨진 장소들이다. 팽목항은 2014년 4월16일 참사 이후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차가운 아이들이 부모와 처음 만난 곳이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시의 화랑유원지는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가 세워진 장소다. 참사 13일 뒤 설치돼 2018년 4월16일 문을 닫을 때까지 73만8446명이 찾았다. 광화문광장이 세월호 기억공간이 된 것은 참사 3개월 뒤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참사 책임을 회피하려 하자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을 친 것이다. 세월호 천막은 2019년 3월 철거된 뒤 목조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으로 재탄생했다. 목포신항에는 2017년 3월23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기억공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팽목항은 국제적 항만도시로 변신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름도 진도항으로 바뀌었다. 희망의 등대, 하늘나라 우체통, 기억관 컨테이너, 기억의 벽 등 세월호의 흔적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자리에는 2024년까지 가칭 ‘4·16생명안전공원’이 조성된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도 지난해 8월 정부 결정에 따라 1.3㎞ 떨어진 목포 고하도로 옮겨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하나 남아 있던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설치된 기억공간이 당초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는 게 철거의 이유다. 그렇다 해도 서울시의 기억공간 철거 강행은 유감스럽다. 광화문광장은 세월호 기억의 중요한 공간이다. 유족들이 뙤약볕과 한기 속에 숱한 아픔과 모욕을 견뎌가며 세월호 특조위 구성 등을 일궈낸 곳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다. 억지로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게 아니다. 서울시의 강제철거 통보에 유가족들이 세월호 흔적 지우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강제철거 통보 방침을 접고 유족들과 기억공간 처리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 광장은 소통과 공감의 장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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