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옛 소련이 쏜 인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소 간 우주 경쟁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옛 소련은 1961년 4월12일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내면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1969년 7월20일 인류 첫 달 착륙과 인류 첫 우주인 탄생 20주년에 맞춘 유인 우주왕복선 발사 성공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민간인 우주관광은 다시 러시아가 먼저 시작했다. 첫 자비 우주여행객은 미국 사업가 데니스 티토였다. 그는 2001년 4월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약 8일간 머물다 귀환했다. 비용은 2000만달러였다. 이후 2009년 9월까지 민간인 6명이 더 소유스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가 ISS 우주관광 프로그램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이에 자극받았을까. 2011년 우주왕복선 계획까지 접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9년 6월 ISS를 민간에 개방하는 우주관광을 선언한다.
하지만 NASA가 손을 놓은 사이 우주로 눈을 돌린 이들이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리처드 브랜슨 같은 억만장자들이었다. 이들은 2000년 블루 오리진, 2002년 스페이스X, 2004년 버진 갤럭틱이라는 우주 탐사기업을 차례로 세웠다. 어릴 때부터 키운 우주에 대한 동경이 원동력인 것은 같았지만, 그 지향점은 달랐다. 베이조스와 브랜슨은 무중력 상태 체험에 주안점을 뒀다. 머스크는 보다 원대해서 우주 궤도비행과 화성 이주까지 꿈꾸고 있다.
‘누가 첫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들 간 경쟁의 승자는 브랜슨이었다. 브랜슨은 지난 11일 버진 갤럭틱이 만든 우주비행선을 타고 지상 약 89㎞까지 갔다가 귀환했다. 출발은 가장 늦었지만 ‘괴짜 억만장자’답게 열정으로 역전승을 일궜다. 하지만 이들의 우주 경쟁은 곧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베이조스는 오는 20일,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오는 9월 첫 우주관광에 나선다. 우주관광은 아직 부자들의 놀음이다. 여행 경비 25만달러는 보통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우주를 향한 꿈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거부들 간의 경쟁이 우주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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