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 7월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의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대한 감사 결과를 8일 발표했다. 결론은 국방부 2개과와 합참 해외파병과, 해군본부와 해군작전사령부 의무실, 청해부대 34진 등 6개 기관 및 부서에 대해 경고 처분을 하고, 개별 인사에 대해 징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국방부는 “집단감염이 특정 개인의 잘못에서 야기되었다기보다는 관련 기관 모두에 각 일부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승조원 90%가 감염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다니 이런 일을 두고 어처구니없다고 할 것이다.
문무대왕함 집단감염 사태는 해외 작전 중이던 부대가 감염병 때문에 조기 복귀한 엄중한 사안이다. 전체 승조원 301명 가운데 90.4%에 해당하는 272명이 감염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인되기 약 2주 전 최초 감기 증상자가 발생했지만 8일 뒤에야 본국에 보고했다. 가벼운 기침이나 발열 등 미세한 증상 발현 시 즉시 보고하라는 지침을 어겼다. 신속한 검사를 위해 구입한 검사키트도 실수로 빠뜨린 채 출항했다. 파병 준비에서부터 사후 대응까지 총체적인 부실이 있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모든 점에서 대응이 다소 미흡했다면서 다 넘어갔다. 청해부대가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출항하고, 도중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적극적 대안 검토가 다소 미흡했다”고만 했다. 심지어 감염 초기 대응 조치는 적절했다고 했다. 첫 증상자 발생 사흘 후부터 승조원 식당 내 비말차단막 설치, 체력단련실 폐쇄 등 강력한 거리 두기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승조원들의 일탈행위가 없었다는 데 안도하는 분위기다. 참으로 안이한 태도이다.
잘못이 없는 사람을 희생양 삼아서도 안 되겠지만, 파병 부대를 작전 중 조기 귀환시킨 이런 사안에조차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른 국가기관이나 민간 기업에서 비슷한 사안이 벌어졌어도 이런 감사 결과가 나왔을까. ‘셀프 감사’의 한계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잇단 군내 성폭력 및 가혹행위 피해 장병들의 죽음에서 지휘자들의 무능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군의 대응은 여전히 미진하다. 국방부는 이번에도 재발 방지를 강조하지만 엄정한 진상규명과 상응하는 문책이 없으면 이런 일은 재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두고 이대로 넘어가선 안 된다. 지휘 책임이라도 물어야 한다. 우선 국방부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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