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성폭력 피해 이모 중사 사망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유사한 희생자가 있었지만 공군이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5월11일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여군 A하사가 자신의 영외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군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A하사의 상관 B준위의 강제추행 혐의를 확인하고도 한 달 뒤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로 종결했다고 15일 밝혔다. A하사가 숨진 시점은 이 중사 사건 발생 열흘 전이다. 이 중사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공군이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해 고의로 사건을 은폐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먼저 군 당국이 B준위의 강제추행 사실을 알고도 A하사 사건을 단순 변사로 종결했다는 것이다. 당시 군 경찰은 사건 발생 열흘 만인 5월21일에 B준위를 심문해 올해 3월과 4월 두 차례 볼을 잡아당기는 등 성추행을 했고, 7차례 이상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는 등 수시로 업무와 관계없는 연락을 한 사실, 그리고 A하사 사망 이틀 전 피해자와 통화한 기록을 삭제한 것 등을 확인했다. 또 다른 의혹은 군 당국이 유가족에게 B준위의 강제추행 사실은 물론 B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한 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점이다. 더구나 군 당국은 유가족이 B준위에 대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수사를 요청하자 뒤늦게 기소했다. 군 검찰은 “ ‘간음’ 혐의를 조사하다 보니 강제추행 소지가 있어 입건했다”고 설명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유족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한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수사 과정에서 B준위는 지난달 14일 강제추행 혐의로 뒤늦게 기소됐는데 그 시점도 석연치 않다. 국방부가 이 중사 사망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1주일 후로 군에 대한 비난이 커질까봐 일부러 늦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공군은 A하사의 죽음이 성추행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이 중사 사건을 계기로 군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군은 국민을 기만한 것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국방부는 A하사의 성추행에 의한 죽음과 이것이 은폐된 경위를 철저히 밝혀 관련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 이 중사 사건 때 무더기 불기소로 국민적 분노를 산 것을 국방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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