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고려 중이라고 지난 18일(현지시간)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화상 정상회담 사흘 만에 나온 외교적 강수다. 베이징 올림픽이 미·중 갈등의 새 불씨로 등장한 것이다. 보이콧이 현실화할 경우 미·중 갈등이 악화될 게 뻔하다. 베이징 올림픽을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계기로 삼으려는 정부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된다.
외교적 보이콧은 선수단은 파견하되 정부 차원의 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화할 경우 전면 보이콧 못지않은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미국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소련의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전면 보이콧은 1980년대 미·소 간 심각한 군비경쟁으로 이어졌다. 물론 외교적 보이콧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결정하면 서방국이 따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당장 영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터다. 한국도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올림픽 정신과 국제적 파장을 감안하면 보이콧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미국에는 양보할 수 없는 인권 문제가, 중국에는 시진핑 주석의 체면이 걸려 있는 만큼 순탄한 해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 시사는 문재인 정부에 악재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 이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또 한번의 전기를 마련하려는 구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장기적으로도 북핵 해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그 파장이 미래 안보 및 경제 전략 전반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중국의 군사력 억제를 목표로 출범한 오커스(AUKUS) 확대 추진 의사를 공식화하고,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내년 초 중국에 맞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 및 우방국과의 새로운 경제 틀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가속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참여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외교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본격적인 올림픽 보이콧 논의에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이 발등의 과제다. 미·중 갈등 장기화에 대비한 새로운 외교적 접근법을 찾는 데도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무기가 쓴 기사 > 경향신문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김용균 3주기,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211210) (0) | 2021.12.09 |
---|---|
[사설] 미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 보이콧, 정부 현명히 대처해야 (0) | 2021.12.07 |
[사설] 녹취록으로 불거진 ‘수사 무마’, 이 중사 사건 재수사해야(211119) (0) | 2021.11.18 |
[사설] 공군 내 ‘제2의 이 중사 의혹’ 사건, 군은 철저히 진상 규명해야(211116) (0) | 2021.11.15 |
[사설] 시진핑 장기집권 공식화한 ‘역사 결의’와 한국 외교의 과제(211113) (0) | 2021.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