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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녹취록으로 불거진 ‘수사 무마’, 이 중사 사건 재수사해야(211119)

성추행 피해 공군 이모 중사 사망사건 수사 초기에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이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중사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최종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 40일 만에 공군 수사 지휘·감독 책임자의 수사 무마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군 수사에 대한 신뢰가 의문시되는 만큼 재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게 옳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6월 중순 공군본부 보통검찰부 소속 군검사 5명이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최근 공개했다. A 군검사는 “제가 (가해자를) 구속시켜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어요. … 왜 구속을 안 시킨 건가요”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B 선임은 “실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야 우리도 나중에 나가면 다 그렇게 전관예우로 먹고살아야 되는 거야. 직접 불구속 지휘하는데 뭐 어쩌라고…”라고 답한다. 군인권센터는 ‘실장님’이 전 실장을 지칭한다며 전 실장이 사건 초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는 전 실장이 국방부 검찰단 조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이 중사 사건을 직접 지휘한 적이 없다고 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녹취록에 언급된 전관예우에 대해서도 군인권센터는 “가해자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에는 전 실장과 군 법무관 동기이자 대학 선후배 사이인 김모 예비역 대령이 파트너 변호사로 있다”고 주장했다. 전관예우 때문에 전 실장이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고 군검사들이 짐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녹취록에는 공군본부 법무실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소속 군무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정황도 나온다. 공군본부에 대한 국방부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중사 사건 수사의 핵심은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상관들의 회유·압박 및 2차 가해, 부실한 초동수사였다. 그런데 국방부 검찰단은 전 실장을 비롯해 초동수사 관계자들을 모두 불기소했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일은 국방부가 전 실장의 판단을 수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전 실장의 수사 무마 정황을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된 만큼 사실 규명을 위한 재수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전 실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히고, 국방부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고 한 만큼 재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공정성을 위해서는 외부 수사기관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 유가족 주장대로 특검 도입을 적극 고려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