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발생한 공군 제8전투비행단 A하사 성추행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B준위가 지난해 또 다른 성추행을 저지른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군 당국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군이 B준위의 추가 성추행을 은폐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군 당국이 B준위 성추행 의혹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A하사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군의 안이한 대응을 용납할 수 없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A하사 사망 사건 군 수사기록에는 B준위가 지난해 또 다른 성추행을 저지른 정황이 보인다. 또 다른 성추행의 피해자는 지난해 B준위가 뒤에서 손을 잡고 팔 안쪽 겨드랑이를 만지거나, 자신과 마주쳤을 때 “보러 온 줄 알고 설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너무 그리웠다”는 말을 하며 신체적 접촉도 했다고 한다. B준위의 행동은 명백한 성추행이다. 피해자는 성추행 사실을 자신의 부대장에게 보고하면서 B준위의 행동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하지만 부대장은 B준위의 행위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도 소집하지 않고 성인지 감수성 교육만 실시했다. 성폭력에 대한 군의 안일한 인식과 미온적인 대처가 비극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A하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B준위에 대한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추가 정황도 드러났다. B준위는 A하사 사망 당일 그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 방을 뒤지는 등 증거물에 손을 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군 수사기관은 B준위에 대한 몸 수색이나 그의 차량에 대한 수색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건 당일 B준위의 차량 블랙박스 기록은 지워졌고, 수사기관은 A하사의 유서나 노트북 같은 기본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고의적인 증거 인멸로 수사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용의자에 대한 수색은 초동 수사의 기본인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공군은 올해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대응 과정에서 사건 무마와 부실 수사 등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성폭력 대응 부실을 드러냈다. 도대체 어떤 조치가 있어야 군이 성범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는 건가. 이런 식이라면 또 다른 성추행 사건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심마저 든다. 공군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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