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고 회사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잇따라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는 16일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이 낸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도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기업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경영상 어려움을 빌미로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아온 기업들의 관행에 쐐기를 박은 판결로 평가한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노동자들의 추가 수당 요구가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였다. 신의칙이란, 계약 당사자는 신뢰를 바탕으로 성의 있게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은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인데도 회사 측에서 이를 제외하고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했다며 수당 차액을 달라고 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임금협상 당시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단협을 체결했는데 통상임금 소급분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으나, 2심은 신의칙 위반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신의칙 적용이 오락가락하게 된 것은 2013년 12월 ‘양승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비롯했다. 고정적·일률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밝히면서도, 기업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 경우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다. 문제는 기준이 모호해 재판부마다 판결이 엇갈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경영상태의 악화를 예견할 수 있었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의칙을 들어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신의칙 적용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에도 기아자동차, 두산모트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 측은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며 소송전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판결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들이 신의칙에 기대는 관행을 끝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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