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독자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0일 중국과 미얀마 등 각국의 인권 침해에 관련된 개인과 단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의 강제 노동과 인권 탄압을 이유로 북한 중앙검찰소와 리영길 국방상 등을 포함시켰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미관계 개선에 또 다른 악재여서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종전의 제재와 다른 점이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 상황과 관련된 제재라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역대 행정부처럼 북한의 인권 상황은 규탄했지만 인권 문제를 대화나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 인권을 고리 삼아 제재를 가한 것은 바이든 대외 정책의 핵심인 인권 중시 정책을 대북 정책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제재가 73주년 세계인권의날과 바이든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 폐막일에 맞춰 나온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바이든이 대북 인권 제재 카드를 꺼내든 것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 카드일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4월 새 대북정책 검토를 완성한 뒤 북한과 대화에 나섰으나 호응하지 않자 압박으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제재가 북한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하지만 압박 카드가 아닌 전략의 변화일 수도 있다. 즉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북핵 문제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뒷전으로 미루는, 이른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재현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국의 새 제재에 북한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자국 내 인권을 거론하는 경우 반발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 수위다. 북한이 미국의 제재를 빌미로 추가 도발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북·미 대화가 깊은 단절로 흐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프로세스도 동력을 잃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하에 북한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동안 북한은 핵 무력을 고도화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증진시켰다. 이를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이번 제재와 상관없이 북한과의 대화 자세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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