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적대국을 향해 여러 개의 용어로 지칭했다. 냉전 말기인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불렀다. 2년여 뒤 레이건은 테러지원국이라는 의미로 ‘무법국가(outlaw states)’라는 말을 썼다.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과 일치하진 않았는데, 그가 지목한 것은 이란·리비아·북한·쿠바·니카라과 5개국이었다. 2001년 9·11테러를 겪은 후 조지 W 부시는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exis of evil)’이라고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을 ‘불량배(rogue actor)’라고 칭했다.
‘불량국가(rogue state)’도 빼놓을 수 없다. 자국민에 대한 인권 유린과 테러 지원, 대량살상무기 추구로 위협이 되는 나라를 일컫는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이번엔 북한·쿠바·이란·리비아·이라크 5개 국가가 지목됐다. 미 국무부의 사용 자제 선언으로 이 말은 2000년 6월부터 한동안 사라졌다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시 등장했다. 트럼프는 201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불량국가를 언급하면서 북한과 이란, 베네수엘라를 지목했다. 통상 아프가니스탄, 벨라루스, 쿠바, 이란, 니카라과, 북한, 러시아, 시리아, 베네수엘라를 불량국가라 부른다. 상황에 따라 대상이 바뀌었지만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나라가 있다. 북한과 이란이다. 모두 핵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최대 위협으로 본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북한을 향해 쓰지 않은 강경한 용어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소환됐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불량정권(rogue regime)’이라고 했다. 북한 자체를 불량이라고 하는 대신 김정은 체제를 겨냥한 듯 느껴진다. 그는 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미국의 비확산 목표와 부합한다는 말도 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골드버그 지명자의 발언이 대북 강경파로서의 개인적인 소신일 수도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예고한 듯도 하다. 한반도가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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