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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앙코르 마크롱"(220426)

선출직 경력 전무, 현역 의원 없는 정당 창당. 정치 신인인 그가 내세울 것은 변변찮았지만 성과는 눈부셨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기세로 결선투표에서 압승을 거둬 39세에 국가 정상에 올랐다. 그의 신생 정당은 ‘공화·사회’ 양당 정치의 틀을 깨고 1당이 됐다. 당선 후 행보도 거침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 배틀’을 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르사유궁전으로 불러들여 위세를 과시했다. 비록 ‘독재자’ ‘태양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지만, 5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와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판치던 세계 정치판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다.

마크롱이 24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다시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프랑스 시민들은 또다시 극우 후보를 거부했다. 극우 세력에 맞서 공화국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욕을 드러낸 푸틴에 맞설 수 있는 유럽의 수호자로 평가된다. 각국 지도자들이 앞다퉈 당선 축하인사를 보낸 것은 그의 당선으로 유럽연합과 나토가 러시아에 맞서 단결을 유지하게 된 데 대한 안도이자 감사의 표시였다. 20년 만에 재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운 마크롱은 이로써 샤를 드골과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등과 같은 반열에 근접했다.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은 5년 전과 달리 조심스러웠다. 그는 승리가 굳어진 직후 에펠탑 근처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여러분이 나의 사상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의 사상을 막기 위해 나에게 투표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공화국을 위한 시민의 선택을 칭송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두 차례 극우 후보를 거부했지만 공화국의 가치는 날로 희미해지고 있다. 이번 대선은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결선투표율과 가장 높은 기권율을 기록했다. 르펜은 5년 전보다 마크롱과의 득표차를 절반 수준으로 좁혔다. 르펜이 ‘마의 40%’ 득표율을 얻은 것은 마크롱에는 부담이다. 기권하거나 마지못해 지지해준 좌파 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6월 총선에서 패배하는 것은 물론 정치 생명을 결정적으로 위협받을 수도 있다. 재선의 마크롱, 또다시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