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밤 열린 인민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면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기를 억지력으로만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지난달 대남 전술핵 위협에 이어 핵위협을 한층 고조시켰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 사용 목적을 ‘적대적 핵보유국의 침략 및 공격을 격퇴하고 보복타격하는 것’이라고 규정해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언급한 ‘국가의 근본이익 침탈’은 전쟁이 아닌 상황으로 확대 해석할 여지가 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전쟁이 아닌 위협상황에서 선제 핵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 및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핵무기 소형·경량화, 전술핵무기 개발 등을 과업으로 제시한 이후 관련 발언의 수위를 높여왔다. 지난달에는 유사시 남측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협박한 뒤 곧바로 남측의 전방지역을 겨냥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시험발사했다.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모한 행동으로 강력히 규탄한다.
김 위원장은 또 이날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7차 핵실험이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추가 도발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날 열병식엔 지난달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힌 신형 ICBM ‘화성-17형’,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최신 무기들을 등장시켰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선제타격론’을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나흘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관계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이 진정 경제개발을 하고자 한다면 핵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핵무력에 기댄 전략은 북한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다. 미국도 북한이 핵무기를 최종 완성에 이르기 전에 협상에 나서야 한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완성하고 미국을 공격할 투발수단까지 다 갖추면 북핵 협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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