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 11월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다. 인구 370만명인 핀란드가 소련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토의 10%를 내주고 3개월여 만에 굴복했다. 하지만 발트3국과 달리 소련에 재병합되는 운명은 피했다. 이런 경험은 핀란드가 종전 후 중립국을 선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48년 소련과의 우호조약으로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핀란드는 마셜플랜을 거부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대신 소련이 국내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며 국가를 유지하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국제정치 용어가 나온 배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핀란드를 여러 차례 소환하고 있다. 전쟁 초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태 해결책으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제시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러시아가 고전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중립국 핀란드가 차제에 러시아의 입김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며 나토에 가입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핀란드인에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자극해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에 나선다’는 나토 상호방위조약 5조(집단자위권 발동)가 적용돼 러시아 위협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로 1814년 이래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온 스웨덴도 곧 같은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유럽의 안보지형을 바꿀 수 있는 중대 사건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이를 막기 위해 전쟁을 벌였는데, 오히려 중립국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촉진시킨 셈이다. 아이러니다.
핀란드가 중립국을 선언하고 포기하는 데에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강대국 간 첨예한 대결이다. 핀란드를 중립국으로 만든 것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라면, 그 중립국을 포기하게 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 간의 ‘신냉전’ 기류다. 강대국들이 양 진영으로 갈리면서 중립의 여지가 좁아진 것이다. ‘강소국’ 핀란드도 냉혹한 국제질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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