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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고물가 행진 속 실질임금도 못 지킨 최저임금 인상(220701)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는 2023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0%(460원) 오른 9620원으로 정해졌다. 5.1%인 올해 인상폭과 비슷하며, 8년 만에 법정 심의기간 안에 처리됐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삭감될 수밖에 없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 아쉽다. 윤석열 정부 첫 최저임금이 역대 정부 중 가장 낮게 결정된 것도 유감스럽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의 핵심 쟁점은 고물가였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노동계와 “이미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다”는 경영계가 첨예하게 맞섰다.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은 올해 물가 전망치 평균(4.5%)보다 0.5%포인트 높은 선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4.7%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 더 물가가 오를 것을 감안하면 5.0% 인상은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내년에는 따로 받던 식대나 교통비 같은 복리후생성 금품이 최저임금에 더 많이 산입된다. 그렇게 되면 실제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줄어들면서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감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자의 최저 생계비 보장이라는 최저임금 도입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는 일이다.

이번 최저임금은 노사가 최초안을 제시한 뒤 두 차례 회의 만에 표결로 처리됐다. 노사 간 이견이 클 때는 공익위원의 역할이 중요한데, 공익위원들이 법정 시한 내 처리에만 집착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법정 시한 준수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가 충분히 논의하는 것이다. 그래야 결정 후 부작용이 줄어든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경총에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물가 상승 원인을 임금 인상에 전가하는 것이자 정부가 재계에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법인세 인하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 친기업·반노동 정책을 강화해나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동계와의 갈등을 부추길 정부의 무리한 개입은 자제돼야 마땅하다.

이날 최저임금 결정에 노사 모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들의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을과 을 간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 보호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경영계도 소상공인 등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공익위원들은 이번 심의 과정에서 정부에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적용과 생계비에 관한 연구를 권고했다. 향후 최저임금 결정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