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 52시간제 유연화 방안을 마련한다며 이를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다음주에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또 올해 말까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계획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건 노동시장 개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시간을 늘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노동계가 반대의 뜻을 밝혀 추진 과정에서 큰 갈등이 빚어질 것이 분명하다.
주 52시간제 유연화의 핵심은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바꾸는 것이다. 이 경우 한 주 최대 12시간인 연장 노동시간은 최대 48시간까지 가능해진다. 문제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실노동시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을 크게 높인다. 정부는 근무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도입으로 과로를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업무가 많을 때 초과근무했다가 나중에 휴가로 보상받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도 뜻만 그럴듯할 뿐 실제론 노동자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연차휴가도 70%밖에 못 쓰는 판에 노동시간을 늘리기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주 52시간제 유연화 방침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1928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주 52시간제가 전면 실시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제도를 바꾼다니 주 52시간제 무력화 시도라는 반발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시행 반년도 채 안 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움직임도 ‘산재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흐름과 정반대 행보다.
노동정책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선 결코 안 된다.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다음주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출범시킨다면서 구성원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일수록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제도 조정은 필요하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줄이는 쪽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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