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 베이스캠프~제1캠프 사이의 쿰부 아이스폴 구간은 위험하기로 악명 높다. 발 아래에서 시시각각 움직이는 빙하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곳이 있다. 아이스폴 상부에 있는 ‘세락(serac)’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빙하가 급경사를 내려올 때 갈라진 틈과 틈이 교차해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집채보다 크다. 산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세락을 통과하는 것이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몰라서다. 2008년 8월 두 번째로 높은 K2(해발 8611m)에 오른 한국 여성 산악인 고미영(2009년 작고)은 당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마치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2014년 4월 에베레스트 쿰부 아이스폴에서 눈사태가 나 셰르파 16명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원인은 세락 붕괴였다. K2는 8000m급 14좌 중 가장 위험해 ‘죽음을 부르는 산’으로 불린다. K2 중에서도 해발 8200m 지점의 병목지역 격인 세락 지대가 가장 위험하다. K2 희생자 상당수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고미영이 올랐던 2008년 8월 K2에서 한국인 3명을 포함해 11명이 사망했는데, 최소 8명이 세락 붕괴에 따른 산사태로 희생됐다. 2018년 10월에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산 남벽 직등 신루트를 개발하던 한국 등반대 김창오 대장 등 한국 산악인 5명과 셰르파 4명이 베이스캠프에서 사망했다. 세락 붕괴와 산사태가 일으킨 돌풍 탓이었다.
8000m급 고봉의 세락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에 있는 돌로미티 산맥은 아름다운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첫 14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돌로미티의 산봉우리 하나하나가 예술작품 같다”고 했다. 최고봉 마르몰라다(해발 3343m)에서 지난 3일 등반객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실종됐다. 붕괴한 세락이 등반객을 덮쳐 일어난 참사였다. 세락 붕괴 원인은 이례적인 고온이었다. 사고 직전 정상의 기온은 10.3도였다. 세락 붕괴가 기후변화 탓으로 지적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8년 8월 K2 참사를 일으킨 세락 붕괴도 갑자기 따뜻해진 기온 때문으로 추정됐다. 세락이 갈수록 등반객의 무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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