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을 가든 투석전문병원 간판을 흔히 보게 된다. 혈액투석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노인인구 증가로 신장질환의 주원인인 당뇨·고혈압 환자가 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 혈액투석 환자는 2014년에 비해 약 23% 늘어났는데, 이 기간 동안 46% 늘어난 진료비의 절반이 65세 이상 환자의 몫이었다. 혈액투석의 대표적인 방법이 인공투석이다. 신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를 대행하는 장치를 이용해 혈액을 몸 밖으로 꺼내 노폐물을 없애고 필요한 전해질 따위를 보급해 몸 안으로 되돌려 보내는 치료법이다. 신장이식 수술이 어려운 말기 신장 질환자가 주로 받는다.
혈액투석 환자를 전담하는 간호사를 투석실 간호사라고 한다. 신장에 대한 지식은 물론 투석 중 심정지가 오는 경우에 대비한 심폐소생술, 식이요법이 중요한 환자를 위한 영양요법과 약물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춰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환자와의 ‘라포’(상호신뢰관계) 형성이라고 한다. 투석 환자는 한 번에 4시간 정도 걸리는 인공투석을 일주일에 3차례 해야 한다. 투석실 간호사로서는 같은 환자를 일주일에 3번 만나는 셈이다. 환자 대부분이 완치나 호전이 어려운 만성 질환자이다보니 다른 환자보다 라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익숙한 환자가 대부분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난 5일 투석실 간호사와 환자 간 라포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경기 이천에서 일어난 화재가 투석전문병원의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숨진 현은경 간호사(50)는 이 병원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한 고참이었다고 한다. 소방당국은 현 간호사가 불이 났을 때 대피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환자들을 먼저 대피시키기 위한 조치를 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현 간호사는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다’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몸소 실천했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도 절망에 빠진 환자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백의천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다시 한번 빛났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 스러져간 희생만큼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일은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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