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체제’를 빼놓고는 일본 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거대 정당이 된 자민당이 이후 줄곧 여당이 되고, 제1야당 사회당이 견제에 나서는 정당 구도가 형성된 것을 가리킨다. 자민당 중심의 보수정당이 의석의 3분의 2를, 사회당·공산당 중심의 진보정당이 3분의 1을 분점해 ‘1.5 정당제’로 불린다. 55년 체제는 자민당이 1993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1차 붕괴했다. 사회당 등 야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대변화가 일어났다. 이 흐름은 2009년 민주당이 일본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55년 체제의 완전 종식이었다.
55년 체제의 한 축이었던 사회당은 모두 3차례에 걸쳐 일본의 정치를 주도했다. 첫번째는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를 앞세워 자민당과 연립 내각을 구성한 것이다. 사회당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1996년 1월 무라야마 내각 총사퇴 이후 사민당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해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내각과 2009년 민주당 정부에서 국민신당과 함께 연립정부 파트너로 참여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존재감을 유지했지만, 이후 세력을 잃었다. 이름까지 사민당으로 바꿨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사민당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겨우 비례대표 1석을 얻었다. 현재 의석수는 중의원 465석 중 1석, 참의원 248석 중 1석이다. 비례대표 득표율(2.4%)도 정당으로서 존립 요건인 2%를 간신히 넘겼다. 정치단체로 전락하는 상황은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은 미미해졌다.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눈썹이 하얀 일본 총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사죄하는 장면은 한국과 아시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당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정신은 2005년 8월15일 ‘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한 고이즈미 담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3년 4월22일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우경화하는 일본 속에서 저무는 사민당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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