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해 국가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라고 부추긴다. ‘어떤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국가보안법(찬양고무죄)에 걸려 감방에 갈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미국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엔 국가보안법이 없다. 오히려 반역죄를 저질러도 정당한 법 절차 없이는 자국민에 대해 생명이나 자유, 재산권을 박탈하지 못하도록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 미국에서 법을 무시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안와르 알 올라키(39)라는 이슬람 성직자다. 올라키는 미 행정부가 지난해 11월 포트후드 총기 난사사건과 크리스마스 비행기 폭파 미수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극단주의자다. 두 사건을 계기로 올라키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못지않은 유명세를 탔다. 이 때문인지 그에게 올 것이 왔다. 올해 초 미 행정부의 ‘표적살해(targeted killing)’ 명단에 오른 것이다. 표적살해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악명 높은 암살공작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1976년 당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암살을 금지한 뒤 생긴 개념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활용되고 있다. 자위행위라는 점에서 정당성이 있지만 국제법 위반과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라는 반론도 따른다.
미 행정부가 올라키에 대한 표적살해를 승인한 것은 몇 가지 논란거리를 던진다. 무엇보다도 미국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자국민에 대한 표적살해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 행정부는 올라키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표적살해 대상으로 삼았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재판을 통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나라다. 유죄 여부는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로 결정된다. 범죄자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기회가 주어짐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일부 지식층을 제외하고는 이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 지식인 2000여명은 지난 1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올라키 제거가 명확한 증거도 없이 소문에 근거하고 있는데도 정당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성명의 핵심이다. 또 하나는 언론의 침묵이다. 지난달 초 이 사안을 전한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의 행태는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은 행정부의 결정에 대해 의문이나 반대의견을 제시하지도, 사실파악을 위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익명의 정보당국자 말을 전달할 뿐이다. 주류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접한 미국인들은 이렇게 믿을 것이 뻔하다. “대통령이 표적살해 명령을 내렸으니 올라키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겠군”이라고. 더욱이 올라키 제거를 승인한 이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바마라는 점에서 지식인 사회의 배반감은 크다. 자국민에 대한 표적살해 승인은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조차 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오바마가 그럼에도 올라키를 표적살해하도록 승인한 근거는 9·11 사흘 뒤 의회가 승인한 군사력사용승인법이다. 미 의회는 당시 대통령에게 9·11 테러를 계획·승인·가담·협조한 어떤 국가나 조직, 개인에게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했다.
오바마의 조치는 미국 내에서 논란거리가 될 법한데도 그렇지 않다. 진실의 목소리는 강요하는 침묵 속에 파묻혔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정당한 법 절차를 무시하고 기본 인권을 제약하려는 미 행정부의 독단은 오바마의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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