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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6/누가 진군의 나팔을 부는가


열흘 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면에 눈에 띄는 기사를 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1조달러 상당의 광물자원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쓴 제임스 라이슨은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의 비밀도청 프로그램을 폭로해 2006년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다. 기사의 소스는 미 국방부 관계자 위주였다. NYT는 특히 국방부가 첨단기기 배터리의 주원료인 리듐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볼리비아보다 많아 아프간을 ‘리듐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묘사했다고 소개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간전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뉴욕타임스사 정문. (연합뉴스 제공)


이상한 것은 이 기사에 대한 다른 언론들의 반응이 대체로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일부는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남의 특종기사에 대한 시기심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공통된 지적은 기사 내용이 지난해 매클래치나 AFP통신 등을 통해 보도됐다는 것이다.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아프간이 자원의 보고임을 보여주는 과거 연구자료 목록까지 열거했다. ‘아프간은 정말로 다음의 엘도라도일까’라는 기사에서는 “엘도라도라는 신화는 제국주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근거”라고 지적했다. 한 블로그는 이 기사가 나온 시점에 의혹을 제기했다. ‘포린 폴리시’는 NYT의 경쟁사인 워싱턴포스트가 발행하는 잡지이니 제쳐두자. 발행한 지 153년 된 잡지 ‘애틀랜틱’의 정치담당 편집자 마크 앰빈더는 아프간이 ‘자원의 보고’란 사실은 옛 소련이 1985년에 이미 알고 있었고, 부시 행정부도 2007년에 결론낸 ‘구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기사가 아프간전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한 교묘한 정보조작이라고 꼬집었다. 월간 ‘마더 존스’는 한발 더 나아가 “뉴스가 아니라 아프간전 개입을 떠받치는 오바마의 홍보 캠페인”이라며 “NYT가 미 국방부에 낚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NYT 기사는 이들의 주장을 믿게 하는 구석이 많다. 기사는 비록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중국이 지난해 아프간의 구리광산 개발권을 따낸 사실을 언급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향후 중국과의 자원전쟁에서 미국이 져서는 안 된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결국 아프간은 미국이 국익 측면에서 보호해야 할 나라이며, 아프간전은 할 만한 전쟁이라는 정당성을 강요하는 것 같다.

NYT는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도 전쟁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한 전쟁 명분을 찾으려 혈안이 됐을 때 NYT는 행정부가 흘린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대서특필했다. NYT가 인용한 정보원들은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들이었다. 때로는 미 중앙정보국(CIA)마저 버린 아흐메드 찰라비 같은 망명 사기꾼도 있었다. 선봉장은 나중에 ‘리크 게이트’로 더 유명해진 주디스 밀러 기자였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의 빌미를 제공한 NYT는 결국 ‘거짓 정보’를 사과하는 사설을 실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금 아프간전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난해 말 3만명 증파와 함께 2011년 7월부터 철군한다는 출구전략을 마련했지만 여론도 좋지 않고, 의회의 지지도 줄어들고 있다. 예고한 탈레반 근거지 칸다하르에 대한 대공세도 지체되고 있다. 급기야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연합군 사령관이 오바마를 험담하는 설화마저 터지면서 적전분열 양상을 빚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온 NYT 기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과거 오보 논란으로 자성했던 NYT가 전쟁 명분 찾기에 바쁜 국방부의 속셈에 휘말려 다시 전쟁을 부추기는 선봉대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