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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지하철 이어 철도도 노사 합의, 화물만 왜 대화 안 하나(221203)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노조가 파업 돌입 4시간여를 앞두고 2일 새벽 사측과 임금·단체협약에 잠정합의하고 파업을 철회했다. 수도권 전철과 고속철도(KTX) 등 열차가 정상 운행하게 돼 천만다행이다. 무엇보다 전날 파업을 철회한 서울 지하철에 이어 노사 간 대화로 파업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 9일째 이어지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철도 및 지하철 노조가 사측에 공통적으로 요구한 것은 안전인력 충원이다. 철도노조는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이 혁신안이라는 이름으로 인력을 감축해 오봉역 사망사고에서 보듯 노동자 생명은 물론 시민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노조 요구를 수용해 열차를 분리·결합하는 입환업무를 2인1조가 아닌 3인1조로 작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지하철 운행사인 서울교통공사도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달 말 제안한 인력 감축안을 유보하는 한편 지난해 9월 재정 위기를 이유로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노사 특별합의를 수용했다. 내년 상반기 중 안전 부문 등 일부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는 노조 제안도 받아들였다. 철도 및 지하철 노사 협상 타결은 노조의 인력 감축안에 대해 사측이 한발 물러난 덕분에 가능했다. 사측이 노조 요구를 수용한 것은 노조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안전이라는 대의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선 이유도 안전이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는 화물차 기사의 과로와 과속, 과적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제도다. 그런데도 정부는 안전운임제 강화는커녕 완전 폐지를 협박하고 있다. 정부는 시멘트에 이어 정유, 철강, 컨테이너 분야로 업무개시명령을 확대할 태세다. 두 차례 노·정 교섭이 결렬된 후 추가 협상 소식은 감감하다. 화물연대 파업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공감한다면 정부는 더 이상 대화를 거부해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화물 운수종사자 여러분도 업무 중단을 끝내고 경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법과 원칙만 앞세우다 처음으로 유연한 입장을 비쳤다. 파업 사태는 해결이 늦어질수록 국가 경제에 끼칠 피해가 커진다. 정부는 화물연대 노조와 운송 노동자의 복귀 압박을 중단하고 대화를 통한 해법으로 돌아서야 한다. 업무개시명령을 정유와 철강, 컨테이너 분야로 확대하려는 시도도 접어야 한다. 철도와 지하철이 머리를 맞댄 끝에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화물연대만 그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