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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 ILO 개입·중재 권고 무시하고 추가 업무개시명령한 정부(221209)

정부가 8일 국무회의를 열어 파업 중인 화물연대 노동자에 이어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심의·의결했다. 지난달 29일 시멘트 운송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데 이어 9일 만에 2차 명령을 발동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업무개시 명령은 국제 기준 위반’이라고 경고했음에도 오히려 대응 수준을 높인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대화조차 거부하는 태도로는 파업을 풀 수 없다. 정부의 조치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정부가 철강·석유화학 분야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 집행에 추가로 들어간 명분은 산업과 경제에 대한 피해다. 정부는 파업 이후 철강재 출하량이 평시 대비 48% 수준으로, 파업이 지속되면 자동차·조선 산업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화학 분야 출하량도 평시 20% 수준으로 추정했다. 그렇다 해도 강경 일변도의 대응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시멘트 운송 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 후 운송이 거의 회복된 것을 믿고 이런 조치를 내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착각이다. 강경 일변도 대응은 해법이 되기는커녕 노조를 자극할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정부·여당이 제안한 ‘품목 확대 없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올해 말 자동 일몰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정부와 여당이 화물연대 파업 돌입 전 내놓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마저 무시했다. 안전운임제에 대해 ‘선 복귀 후 대화’가 일관된 원칙이라고 재차 밝혔다. 노조를 설득해보려는 야당의 제안조차 일축한 것이다. 여당은 이틀 전 민주당의 양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간 중재 제안을 거부했다. 정부는 ILO 경고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까지 무시하는 정부·여당은 원칙 대응이라고 하지만, 노동 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민주노총은 철강·석유화학 분야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지자 2차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폭압 때문에 일터로 복귀하는 비조합원과 운송사의 입장을 가지고 문제가 해소됐다고 인식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앞장서 강경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와 노조 간 물밑 협상조차 전무하다.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물연대 고사작전이 아니라 화물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안전운임제에 대한 성실한 논의다. 정부와 여당이 대화에 나서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