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국무회의를 열어 파업 중인 화물연대 노동자에 이어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심의·의결했다. 지난달 29일 시멘트 운송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데 이어 9일 만에 2차 명령을 발동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업무개시 명령은 국제 기준 위반’이라고 경고했음에도 오히려 대응 수준을 높인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대화조차 거부하는 태도로는 파업을 풀 수 없다. 정부의 조치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정부가 철강·석유화학 분야 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 집행에 추가로 들어간 명분은 산업과 경제에 대한 피해다. 정부는 파업 이후 철강재 출하량이 평시 대비 48% 수준으로, 파업이 지속되면 자동차·조선 산업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화학 분야 출하량도 평시 20% 수준으로 추정했다. 그렇다 해도 강경 일변도의 대응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시멘트 운송 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 후 운송이 거의 회복된 것을 믿고 이런 조치를 내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착각이다. 강경 일변도 대응은 해법이 되기는커녕 노조를 자극할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정부·여당이 제안한 ‘품목 확대 없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올해 말 자동 일몰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정부와 여당이 화물연대 파업 돌입 전 내놓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마저 무시했다. 안전운임제에 대해 ‘선 복귀 후 대화’가 일관된 원칙이라고 재차 밝혔다. 노조를 설득해보려는 야당의 제안조차 일축한 것이다. 여당은 이틀 전 민주당의 양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간 중재 제안을 거부했다. 정부는 ILO 경고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까지 무시하는 정부·여당은 원칙 대응이라고 하지만, 노동 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민주노총은 철강·석유화학 분야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지자 2차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폭압 때문에 일터로 복귀하는 비조합원과 운송사의 입장을 가지고 문제가 해소됐다고 인식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앞장서 강경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와 노조 간 물밑 협상조차 전무하다.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물연대 고사작전이 아니라 화물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안전운임제에 대한 성실한 논의다. 정부와 여당이 대화에 나서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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