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조찬제 선임기자의 월드 프리즘1]파리 테러가 소셜미디어 ‘재갈’ 명분인가(2015.01.27ㅣ주간경향 1111호)

# 지난해 12월 영국에 사는 여섯 아이의 엄마 루나 칸(35)은 페이스북에서 테러리즘을 조장한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영국 검찰이 칸을 기소한 혐의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가 장난감 총과 칼을 들고 있는 어린 자식들의 사진을 올려 다른 사람들을 지하드(성전)의 길로 이끌려고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2013년 5월 대낮에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참수된 영국 군인 살해사건을 무슬림의 소행이라고 비난한 데 대한 불만으로 다른 사용자가 올린 글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칸을 “과격하고 극단적인 신념을 가진 확실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단정지어 5년형을 선고했다.

# 지난해 12월 2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부 치코피 카운티 경찰은 27세 청년 찰스 디로사를 소환했다. 페이스북에 경찰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글을 올린 혐의였다. 디로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견장을 돼지에나 달아라”(Put Wings On Pigs)였다. 이 글은 이틀 전인 20일 뉴욕시에서 경찰관 2명을 총으로 사살한 뒤 자살한 이스마일 브린슬리가 범행 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 그대로였다.

# 2012년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 군인 6명이 도로에 설치한 급조폭발물이 터져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10대 소년 아즈하르 아흐메드는 페이스북에 영국 군인 때문에 무고한 아프간인들이 죽었고, 그 책임은 영국 군인에 있어 죽어 마땅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다음날 아흐메드는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기소됐다. 그는 그 해 10월 재판에서 그를 감금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24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위의 사례들은 ‘소셜미디어 시대’에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과연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돼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방국가들의 온라인 검열 강화
소셜미디어가 기존 매체의 위력을 뛰어넘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2010년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시위 때나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때 소셜미디어가 보여준 위력은 엄청났다.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자 서방 국가들은 이를 또 다른 위협으로 여기며 온라인상의 글과 영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 표현의 자유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경찰청이 지난해 12월 30일 트위터에 올린 경고문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논평을 계속 감시해 불쾌한 글이 있다면 조사할 테니 유의 바란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시민의 기본적 자유 수호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 ‘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은 온라인상의 글에 대해 합법적인 억압을 하는 서방 국가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서방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경찰국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찰스 디로사의 사례다. 경찰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기소될 수는 없다. 디로사를 처벌하려면 범죄선동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 이는 명백한 의도가 있고 긴급한 불법행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UCLA 로스쿨 교수 유진 볼로크는 지난해 12월 23일 워싱턴포스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디로사의 서술에 의도가 있다고 해도 구체적 대상·장소·시간이 없다면 처벌받을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역사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된 시대는 없었다.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보편적으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증오연설이나 반유대주의 발언 등에 한해 용인돼왔다. 때로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약받았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선별적 또는 이중적으로 적용된다는 데 있다.

영국 경찰들이 경찰을 존중하고 군인을 모욕하는 사람을 감금하라는 글이 적힌 시위를 벌이고 있다.


디로사가 경찰을 모독하는 글을 올리자 한 전직 경찰관은 디로사의 글에 대항해 경찰 동료들에게 그를 죽이라는 선동적인 글을 치코피 카운티 경찰국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그는 기소되지 않았다. 그의 글을 미국 진보 온라인 매체 인터셉트에 소개한 앤드루 메이어는 “전직 경찰의 언급은 체포됐거나 체포 위협을 받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봐도 협박에 가깝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경찰이 법 위에 군림함을 증명한 것”이라고 했다.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언론사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1·7 테러) 이후 전개된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대하는 서방의 이중적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프랑스 법무부는 지난 14일 1·7 테러 이후 증오연설이나 반유대주의, 테러 옹호를 이유로 체포된 프랑스인은 54명이라고 밝혔다. 2013년 나치식 경례와 비슷한 손짓을 하고 유대계 언론인이 가스실에서 죽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가 기소된 프랑스 코미디언 디외도네도 포함됐다. 그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샤를리 쿨리발리’라고 느낀다는 글을 올렸다가 14일 선동 혐의로 감금됐다. 이 글은 1·7 테러 사건의 희생자인 언론사 샤를리 에브도와 범인의 한 명인 아메디 쿨리발리의 이름을 합성한 것으로, 샤를리 에브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를 조롱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1·7 테러 이후 세계 정상들과 시민들이 샤를리 에브도를 지지하기 위해 한목소리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잡지를 구매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처벌을 받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국 경찰청이 지난해 12월 30일 웹사이트에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감시해 단속하겠다’고 올린 경고문. | 인터셉트 웹사이트 캡처


프랑스에선 애국자법 신설 논의까지

1·7 테러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은 소셜미디어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고발로 드러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 불법정보수집 실태를 제한하려는 노력은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는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만든 애국자법을 신설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향후 프랑스 상황은 9·11 테러 이후 미국과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 당시 미국은 애국심으로 무장한 광기 넘치는 사회였다. 애국자법이 제정되고, 국토안보부가 신설되고, 개인에 대한 정보감청이 이뤄지는 등 시민권은 최악의 수준으로 약화됐다. 그 결과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의 감시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국가는 개인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하기 일쑤였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향후 전개 방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해 9월 채택한 ‘결의 2178’의 틀 안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결의안은 외국인 테러 전투원 모집과 조직화, 이동을 막기 위한 국경통제 및 자금차단 등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획일적인 움직임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폭주열차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외면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 있다. 1·7 테러가 이념을 넘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전 세계를 똘똘 뭉치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정작 온라인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범죄라는 멍에가 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