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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5]우크라이나 사태 뒤에 ‘네오콘’ 있다?(2015.03.03ㅣ주간경향 1115호)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로 쫓겨난 지 오는 22일이면 1년이다. 그 후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친서방 세력과 동부를 근거지로 한 친러시아 반군 간 교전으로 우크라이나는 내전에 빠져 있다. 독일 정보기관은 내전 사망자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표보다 10배나 많은 5만명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9월 체결한 평화협정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을 배제한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정 체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네오콘’으로 불리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를 위해 공작을 편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이른바 ‘네오콘 공작설’이다. 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쫓아낸 ‘쿠데타’일 뿐이다. 이 같은 주장은 미국이나 서방 주류언론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네오콘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 네오콘은 누구일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부터)이 2월 11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미국을 배제한 채 우크라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의를 하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를 네오콘의 공작이라고 줄곧 주장해온 대표적 인사는 미국의 독립언론 컨소시엄뉴스를 운영하고 있는 로버트 패리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때부터 이 같은 주장을 담은 기사를 컨소시엄뉴스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정권 교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자행하는 등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해온 네오콘은 2008년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정권 교체 시도를 시리아와 이란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우려와 달리 오바마는 부시 시절의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를 유임시켰고, 진보진영으로부터 네오콘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았던 경선 상대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했다. 시리아와 이란 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력할 것이라는 계산도 현실화하지 않았다. 패리는 미국 대외정책을 주도하는 국무부 일부 책임자를 비롯한 네오콘이 오바마가 푸틴과 협력하는 데 주저하는 틈을 파고들어 두 사람의 협력 관계를 완전히 깰 필요가 있었고, 그 기회가 우크라이나였다고 분석했다.

네오콘, 위기 조장 위해 ‘악마 낙인찍기’
네오콘들은 우크라이나에 위기를 조장하기 위해 ‘악마 낙인찍기’ 전략을 활용했다. 푸틴과 야누코비치를 나쁜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명분으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반목과 같은 이라크 내 복잡한 상황보다 대량살상무기와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제거를 앞세워 미국인들의 공분을 이끌어낸 것과 같다. 미국 주류언론들은 ‘푸틴은 히틀러’라는 발언은 크게 다루되 러시아 및 비주류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쿠데타’와 ‘네오나치’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을 배제한 평화협상 과정에 대한 불만에서도 드러났다. 공화당 강경파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 6일 시작된 ‘제51차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 중 자국 대표단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평화협상을 1938년 뮌헨조약에 비유하며 “푸틴과 협상하는 것은 히틀러를 달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주도한 오바마 행정부 내 대표 네오콘으로는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를 꼽을 수 있다. 뉼런드는 국무부 대변인을 지내 언론에도 친숙하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를 위해 우크라이나 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사태 초기인 2013년 12월 그는 우크라이나 기업가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은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면서 미국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바라는 미래(유럽국가) 속으로 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누코비치 대통령 이후의 새 우크라이나를 이끌 지도자 인선에까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2월 초 유튜브에 공개된 제프리 파얏트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뉼런드는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중앙은행 총재가 새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야체뉴크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쫓겨난 뒤 총리에 올랐다. 뉼런드의 시가는 네오콘 집안으로 유명하다. 남편은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네오콘 이론가인 역사학자 로버트 케이건이다. 네오콘의 핵심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멤버인 그는 네오콘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윌리엄 크리스톨과 함께 지은 <현재의 위험들>이라는 책에서 이라크와 북한은 미국의 중요한 이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더라도 미국이 반드시 개입해야 할 국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의 대외정책 고문을 지냈으며, 오바마 행정부 출범 뒤에도 클린턴 장관의 고문을 역임했다.

시동생은 네오콘의 산실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전임연구원 프레드릭 케이건이다. 그는 2007년 미국이 이라크 주둔 병력을 증강하는 전략을 기획한 인물로, 오바마 행정부의 아프간 확전 전략 수립에도 기여했다. 오바마 1기 행정부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지난해 초 발간한 <의무: 전시 장관의 회고록>에서 “내가 아프간에 더 많은 군인을 보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중요한 길을 제시한 것이 프레드릭이 보내준 미발간 에세이였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내 대표적인 네오콘인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 / 라이트웹 웹사이트 캡처


칼 거쉬먼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 / 라이트웹 웹사이트 캡처


포로셴코 대통령은 ‘내부첩자’ 역할
칼 거쉬먼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도 중요한 네오콘이다. NED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3년 정권 교체 대상국에서 정치적 활동과 심리전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기관으로, 연 예산이 1억 달러에 이른다. 거쉬먼은 2013년 8월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일어난 의문의 화학무기 사건으로 미국의 시리아 개입을 막으려는 푸틴의 시도가 실패한 직후인 그해 9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이제 우크라이나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거쉬먼은 우크라이나는 푸틴 제거라는 더 큰 선물을 위한 중간단계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또 “유럽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푸틴의 러시아 제국주의 이념의 종말을 가속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NED는 반정부 활동가 훈련과 언론인 지원, 친서방 기업가 장려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65개의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뉼런드 차관보와 우크라이나 차기 지도자 인선을 상담한 파얏트 대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그는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로 재직하던 2009년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을 적대시하는 데 기여하는 등 미국과 IAEA가 협력하는 데 중재자 역할을 했다.

네오콘의 지지로 덕을 본 우크라이나 정치지도자로는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과 야체뉴크 총리, 나탈리 자레스코 재무장관을 꼽을 수 있다. 제과업계에서 성공을 거둬 ‘초콜릿 왕’이라고 불리다 대통령이 된 포로셴코는 2006년부터 미국 정부와 협력해온 ‘우크라이나의 내부첩자’였던 것으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에서 드러났다. 야뉴체크는 뉼런드 차관보의 예상대로 총리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 태생인 자레스코는 오랫동안 미 국무부에서 일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재무장관에 임명되면서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획득했다.

주류언론의 주장과 달리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이 미국 등 서방에 있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국제관계 이론가인 존 메어시하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해 포린어페어스 9·10월호 기고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과 유럽연합(EU)의 팽창 전략에 따른 반발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와 러시아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만드는 쪽으로 미국의 대외전략이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재임 중 일어난 중남미 각국의 민주주의 지도자에 대한 쿠데타로 비판받아온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11월 독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실수다”라며 서방을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