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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8]미국은 왜 MH17기 피격 자료 공개 않나(2015.03.31ㅣ주간경향 1119호)

2014년 7월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보잉 여객기 ‘MH17 피격사건’ 미스터리가 사건 발생 8개월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간 교전이 치열하던 그날 오후 4시20분쯤(현지시간) 1만m 상공에서 298명을 태우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MH17편은 의문의 피격으로 탑승객이 모두 사망했다. 사건 이후 외부 물체에 피격됐다는 조사보고서가 나왔지만 그것이 무엇이며, 누가 격추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친러 반군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결정적 증거가 없어 논란만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정보망을 보유한 미국이 침묵을 지키면서 음모론까지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 정보당국이 사건 발생 5일 뒤 밝힌 피격 주체에 대한 보고서 이후 업데이트 된 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컨소시엄뉴스)이 제기되고, 그동안 억측만 무수했던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주민들의 진술(로이터)까지 나오면서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격추 주체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밝히는 일이자 이 사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 대신 억측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MH17 피격사건의 진실은 무엇이며,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2014년 7월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피격된 MH17 여객기 잔해 속에서 사고 조사요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발생 8개월이 지났지만 ‘누가 어떻게 MH17을 격추했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 데칸크로니클 웹사이트 캡처


우크라이나냐 친러 반군이냐 논란
MH17 격추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격추 무기로 추정되는 러시아제 부크(SA11) 지대공 미사일을 누가 발사했느냐이다. 두 번째는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왜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발사 주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측은 부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러시아 지원을 받은 반군이 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는 부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이 포착됐으며, 당시 MH17 3~5㎞ 부근에 우크라이나 수호이25 전투기가 있었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고 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이 여객기라는 사실을 모르고 실수로 격추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격추에 사용된 무기가 부크 미사일 또는 수호이 25일 수 있으며, 격추 주체는 우크라이나군이나 반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건 발생 약 50일 뒤인 지난해 9월 9일, 이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첫 조사 결과가 나왔다. 피격 원인을 조사한 네덜란드 안전위원회 측은 중간보고서에서 “MH17은 초고속 물체가 비행기를 외부에서 관통해 파괴됐다”고만 밝혀 제기된 각종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조사위는 사고 1주년 안에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한 달여 뒤인 2014년 10월 19일 독일 슈피겔은 연방정보국(BND)이 같은 달 9일 의회에 자체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부크 미사일 포대를 반군에 제공하지 않았지만 미사일은 반군이 쐈으며, 사고 여객기 3~5㎞ 부근에 우크라이나 수호이 25 전투기가 있었다는 러시아 주장도 반박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BND는 관련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조사보고서조차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올해 초 주목을 끄는 보도가 나왔다. 독일 최초의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커렉티브(CORRECTIV)는 지난 1월 9일 전문가 분석과 현지 취재를 통해 MH17 피격사건의 가장 중요한 의문점인 부크 미사일 발사 주체를 러시아 쿠르스크에 있는 53대공여단이라고 자체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 여단이 부크 미사일 포대를 친러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스니츠네로 이동시킨 뒤 발사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친러 반군으로 알려진 피격 주체가 러시아군으로 바뀌는 것으로, 사실일 경우 이 사건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커렉티브가 제시한 근거는 친러 반군 대부분이 광부 출신이어서 미사일 작동법을 모른다는 증언과 부크 미사일은 항상 탱크부대와 함께 이동하는데, 당시 러시아군 탱크부대의 이동이 사진으로 확인된다는 점 등이다. 커렉티브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전제할 경우 러시아의 MH17 격추는 고의였을까, 실수였을까. 커렉티브는 실수로 보고 있다. 사건 발생 날 아침 우크라이나 안보위원회는 러시아군 탱크 3대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이 탱크들은 53대공여단 관할하에 있었으며, 우크라이나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는 이날 사건 현장에서 포착한 우크라이나 전투기를 향해 부크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MH17기가 피격됐다는 것이다. 커렉티브는 이를 바탕으로 MH17 격추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러시아에 있지만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탱크를 공격하면서 여객기를 인간방패로 활용해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 12일 MH17이 부크 미사일에 격추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커렉티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로이터는 MH17이 격추되기 직전에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을 봤다는 체르보니 조브텐 마을 주민 4명의 진술을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체르보니 조브텐 마을은 부크 미사일 발사 지역이라고 주장한 스니츠네로부터 북쪽으로 약 7㎞ 떨어져 있다.

서방측이 MH17을 격추하는 데 활용된 무기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제 부크(SA11) 지대공 미사일. / 텔레그래프 웹사이트 캡처


러시아 소행 알고도 감추고 있을 수도
커렉티브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MH17 피격을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들 법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온 미국 독립언론 컨소시엄뉴스는 지난 3월 14일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미국은 사건 발생 5일 뒤인 지난해 7월 22일 이 사건에 대한 평가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 정보총책임자인 국가정보국장(DNI) 보고서는 러시아와 친러 반군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밝혔지만 러시아가 MH17 피격에 활용된 부크 미사일을 반군에 제공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미국이 처음의 평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격추 주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정황은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관심은 두 번째 논란인 ‘미국은 왜 침묵하고 있을까’로 쏠린다. 당시 급박하게 돌아가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상황은 미 정보당국의 최우선 감시 대상이었다. 따라서 위성·항공 사진과 통화·전자 감청자료를 활용해 이 지역의 군사 움직임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해온 미국이 당연히 부크 미사일의 움직임도 감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부크 미사일 포대는 길이 약 4.8m짜리 미사일 4개로 구성되며, 트럭을 이용해 발사 장소로 운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의문을 풀어줄 결정적 증거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서방의 우크라이나 정권교체(레짐체인지) 전략에 따른 선전술이라는 러시아 측 주장과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러시아의 위장전술이라는 서방 측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미국은 왜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컨소시엄뉴스의 로버트 패리가 지적한 것처럼 미 정부가 첫 평가와 상반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정보를 바로잡을 경우 러시아를 격추의 주체로 지목한 것이 선전전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러시아의 소행임을 알고도 이것이 가져올 국제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감추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MH17 피격사건은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아무런 책임도 없는 민간인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그리고 왜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 한 러시아와 미국 모두 ‘MH17 피격사건은 전쟁범죄’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