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이 이슬람국가(IS)와 전투를 하는 것을 믿지 못한다. 과거에 그들은 우리 보안군을 목표로 삼았으며 실수로 IS에 지원물품을 투하했다.” 이라크군과 함께 IS가 장악해온 티크리트 탈환작전에 참여해온 시아파 민병대의 하나인 아사이브 알 알하크의 대변인 나임 알우부디가 지난 3월 하순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지지부진하던 티크리트 탈환작전은 국제동맹군의 공중지원 덕분에 며칠 뒤인 3월 31일(현지시간) 작전 개시 약 한 달 만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의 가세 소식에 이 작전에 동참해온 시아파 3개 민병대는 “IS를 격퇴하는 데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며 발을 뺐다. 이들이 이끄는 병력은 전체 작전 병력 3만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여서, 티크리트 작전 성공에도 불구하고 향후 IS 격퇴작전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IS를 격퇴하기 위해 몸바쳐 싸워온 시아파 민병대들이 미국의 동참에 불신을 드러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라크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해 온 이라크 티크리트를 탈환한 시아파 민병대원들이 지난 1일 과거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궁전 입구에서 IS 관련 깃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AP연합뉴스
‘IS 무기 지원설’ 현지 언론이 확인
그 답은 ‘IS-미국 커넥션’ 의혹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의혹은 지난해 6월 IS가 시리아 북동부와 이라크 북부를 장악한 이후 줄기차게 제기됐다. 의혹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미 중앙정보국(CIA) 또는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로부터 훈련받은 요원 출신이며, IS는 미국이 만들고 터키가 군사훈련을 지원하고 카타르가 자금을 댔으며, 이 때문에 미국은 IS 격퇴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미 행정부와 주류 언론 대부분은 이에 침묵하거나 음모론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IS-미국 커넥션에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들까지 제시하며 확신하고 있다.
IS 지도자 알바그다디 지원설은 2006년 미국이 종파 간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벌인 ‘새로운 중동정책’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그 후 활개쳐온 시아파에 대항하기 위한 온건 수니파 강화 정책이 실패하자 종파 갈등을 조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알바그다디를 비롯한 많은 수니파 무장조직원을 석방하고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
대신 미국이 IS와 비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들’은 몇 가지 있다. 우선 조 바이든 부통령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고위 인사들이 공식석상에서 한 언급들이다. 뎀프시 의장은 2014년 9월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나는 IS에 자금을 대는 주요 아랍동맹국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원 군사위 소속 대표적 강경보수파인 공화당의 그레이엄은 이에 “그들이 IS에 돈을 대는 이유는 자유시리아군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대적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들은 알아사드를 패퇴시키려 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한 달 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터키·카타르·아랍에미리트연합(UAE)·사우디아라비아는 “알아사드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려고 수억 달러의 자금과 수천t의 무기를 알누스라전선(알카에다)과 전 세계에서 온 급진 지하디스트 세력인 IS를 포함해 반아사드 진영에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러시아투데이(RT) 방송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오래전부터 아랍동맹국과 함께 시리아 반군을 도왔다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바이든은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팀 앤더슨 호주 시드니대 교수도 “미국이 이 작전과 관련 없음을 밝히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IS 무기 지원설은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올해 1월 초 이라크 의원 마지드 알그라우이는 이라크 온라인 매체 이라키뉴스에 “미 비행기가 살라후딘주에 있는 IS에 상당량의 무기와 장비를 투하했다”면서 “이 같은 일은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키뉴스는 IS 대원이 투하된 무기를 회수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미국은 당시 IS가 무기를 가져간 사실을 인정했으나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지난 2월에는 또 다른 이라크 의원 하켐 알자멜리가 이라크군이 안바르주에 있는 IS에 무기를 공급하려던 영국 비행기 2대를 격추시켰다면서 IS로부터 해방된 지역에서 미국·유럽·이스라엘제 무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같은 달 이라크 무장조직 알하샤드 알샤비는 안바르주 알바그다디 지역의 IS에 무기를 공급하던 미군 헬리콥터를 격추했다며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사건 후 이라크 측은 IS에 군사고문으로 고용된 미국인 3명과 이스라엘인 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물론 서방 언론들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IS를 현존하는 최고의 적으로 규정하고 지난해 9월부터 격퇴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정면부인하는 증거들이 나오는 것은 어찌된 걸까. 그 이유의 하나는 미국의 시리아 정책 전환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IS가 이라크 모술을 점령하자 시리아 정책 목표를 ‘알아사드 타도’에서 ‘IS 격퇴’ 쪽으로 바꿨다. 이를 위해 IS에 대항해 싸우는 온건 시리아 반군 세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CIA 비밀 프로그램을 통해 무기를 지원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무기를 지원한 온건 반군은 IS는커녕 알카에다에 대적할 수준조차 되지 못했다. 대표 사례가 지난 3월 초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알려졌다. 미국이 무기를 지원한 시리아 온건 반군 조직인 하라카트 하즘이 시리아 알카에다 분파에 패퇴해 대전차 미사일 토우(TOW)를 비롯한 무기를 넘겨줬다는 것이다.
미국 비행기가 올해 1월 초 이라크의 IS 장악지역에 투하한 무기 및 장비와 이를 회수하고 있는 IS 대원의 모습. / 이라키뉴스 웹사이트 캡처
“미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무기중개인”
압델하킴 벨하지라는 인물의 변신도 온건 반군 지원정책의 실패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벨하지는 2011년 리비아 ‘아랍의 봄’ 당시 미국의 도움을 받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타도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해 미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으로부터 영웅 칭송을 들은 인물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언론 폭스뉴스는 지난 3월 초 벨하지가 최근 리비아의 IS 지도자임을 자처하고 리비아 안에 훈련캠프를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벨하지의 변신은 놀라운 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강경 알카에다-온건파-리비아의 자유전사를 거쳐 IS 지도자로, 주어진 상황에 맞게 변신했을 뿐이다. 폭스뉴스는 “IS 피난처로 떠오른 리비아 상황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미국 정책의 중대한 실패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정책 실패는 IS 격퇴작전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미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무기중개인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또 미국이 테러집단과 커넥션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CIA-알카에다 커넥션’이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CIA는 소련에 맞선 무자헤딘 전사들을 돕기 위해 알카에다 창설자인 오사마 빈 라덴에게 막대한 지원을 했고, 빈 라덴은 반대급부로 조직원을 아프간에 투입했다. 미국은 시리아 사태가 난 지 1년여가 지난 무렵 알카에다가 알아사드 축출에 주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극구 부인한 적이 있다. 최대 적으로 규정한 알카에다가 시리아 반정부 투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은 미국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한 사례일 뿐이다. CIA는 당시 아프간에서 하던 알카에다 지원을 지금 시리아에서 IS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반대론자인 미셸 초스도프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이 세계 헤게모니와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전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어쩌면 세계는 미국이 의도한 대로 굴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무기가 쓴 기사 > 월드프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드 프리즘12]다시 도마에 오른 오바마의 드론 정책(2015.04.28ㅣ주간경향 1123호) (0) | 2015.04.24 |
---|---|
[월드 프리즘11]불법 정보수집, NSA 이전에 DEA 있었다(2015.04.21ㅣ주간경향 1122호) (0) | 2015.04.17 |
[월드 프리즘9]사우디는 어떻게 중동의 새 강자 됐나(2015.04.07ㅣ주간경향 1120호) (0) | 2015.04.10 |
[월드 프리즘8]미국은 왜 MH17기 피격 자료 공개 않나(2015.03.31ㅣ주간경향 1119호) (0) | 2015.04.10 |
[월드 프리즘7]힐러리 ‘e메일게이트’ 약 될까 독 될까( 2015.03.24ㅣ주간경향 1118호) (0) | 2015.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