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11]불법 정보수집, NSA 이전에 DEA 있었다(2015.04.21ㅣ주간경향 1122호)

2013년 6월 미 정보기관 국가안보국(NSA)의 계약직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불법 정보수집 프로그램(PRISM)을 폭로했을 때 미 정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라는 논리로 항변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개인의 전화통화 내역과 e메일까지 까발려지는 등 시민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미 정부의 논리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미국인들에게 먹혀든 것도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NSA 개혁방안을 마련한다고 약속한 데다 9·11과 같은 테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시민 자유의 제약도 불가피하다고 보는 미국인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미 정부의 항변이 거짓말이었으며, 오히려 미국이 감시 천국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감시프로그램이 NSA 프로그램보다 9년이나 앞서 존재해 최근까지 21년 동안 운용돼 온 사실이 최근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NSA의 불법 정보수집 프로그램이 미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 드러난 프로그램은 주로 ‘마약과의 전쟁’에 대응할 목적으로 진행됐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난 4월 7일(현지시간) USA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미 정부는 ‘USTO’로 불리는 감시프로그램을 통해 NSA가 불법적으로 무차별 도·감청을 시작하기 9년 전인 1992년부터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억건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의 운용 주체는 법무부 산하의 마약단속국(DEA)이었다. DEA는 마약 밀매조직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법원의 승인이 필요 없는 행정소장을 근거로 미국인들이 외국으로 거는 모든 국제전화를 도·감청했다. 국제전화 도·감청 대상 국가는 한창 많을 때 116개국이나 됐다. 대상 국가는 매번 바뀌었지만 캐나다·멕시코·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이탈리아·대부분의 중남미 국가가 주타깃이었다. 수집 항목은 통화자 정보와 통화내용을 제외한 전화번호, 통화 날짜와 시간, 통화 지속시간 등이며 수집된 정보는 연방수사국(FBI)이나 세관 등과 공유했다. DEA 감시프로그램은 스노든의 NSA 폭로가 나온 지 3개월 뒤인 2013년 9월 비밀리에 중단되기 전까지 21년간이나 운용됐다.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 대통령은 소속 당에 관계없이 기꺼이 이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법무부가 1998년 미 통신회사 스프린트에 보낸 정보수집 협조요청 서한은 정보수집을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연방 마약단속 계획의 하나”라고 설명했으며, 당시 법무장관이던 재닛 리노와 차관이던 에릭 홀더 현 법무장관이 서명했다.

재닛 리노 전 미국 법무장관(왼쪽)이 1998년 8월 4일 차관이던 에릭 홀더 현 법무장관과 함께 법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그해 법무부 산하 마약단속국(DEA)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제전화 정보수집을 승인했다. / USA투데이 웹사이트 캡처


NSA 프로그램보다 9년이나 앞서
어쩌면 약 2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 정부가 자국민의 전화를 도청한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DEA가 비밀리에 대규모 국제전화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운용한 사실은 이미 지난 1월 중순 미 검찰이 이란으로 불법으로 상품과 기술을 수출하려고 음모한 혐의로 기소한 남성의 사건과 관련해 DEA 고위 관계자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USA투데이 보도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DEA 프로그램이 언제 어떻게 추진됐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특히 NSA 불법 정보수집 프로그램의 청사진(모델)이 됐다는 점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DEA가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남미의 콜롬비아를 겨냥해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부터다. 그때 DEA는 마약조직의 통신 네트워크를 주목하고, 미 국방부로부터 슈퍼컴퓨터 2대와 정보분석가들을 지원받아 마약 밀매 용의자의 정보를 수집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막바지인 1992년 마약조직에 의한 폭력범죄가 극에 달하자 당시 윌리엄 바 법무장관과 로버트 뮐러 FBI 국장은 DEA가 전화정보를 수집하도록 허가를 내렸다. 법무부는 스프린트 등 미 통신회사에 마약범죄 용의자가 아닌 미국이 마약 밀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여기는 국가와 통화하는 모든 미국인의 정보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DEA는 통화정보를 얻기 위해 법원의 승인이 필요 없는 행정소장을 활용했으며,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확보한 정보를 범죄자 기소 등을 위한 증거로는 일절 활용하지 않았다. DEA는 마약 밀매뿐만 아니라 168명의 사망자를 낸 1995년 오클라호마주 연방청사 테러사건과 같은 테러 관련 정보도 수집했다.

요약하면 DEA 정보수집 프로그램은 법원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점, 정보를 더 자주 수집했다는 점에서 NSA보다 정보를 수집하는 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불법 정보수집에 나선 NSA도 처음에는 DEA처럼 법원의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2006년 USA투데이와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NSA의 불법 정보수집 사실이 처음으로 들통나자 부시 행정부는 이후 해외정보감시법(FISA)을 수정했다. 미국인의 통화내용을 감시할 경우 특별법원의 영장을 받도록 했고, 정보를 제공한 통신회사들에는 면책특권을 줘 부담감을 덜어줬다. NSA 자문위원을 지낸 스튜어트 베이커는 USA투데이에 “NSA 감시활동의 효시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DEA 활동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DEA 활동이 NSA 정보수집 프로그램의 모델이 됐다는 것이다.

마약단속국(DEA) 요원이 작전을 하고 있는 모습. / USA투데이 웹사이트 캡처


‘스노든 폭로 뒤 중단’ 발표도 거짓
DEA는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스노든의 NSA 폭로 3개월 뒤인 2013년 9월에 중단했다고 밝혔다. 과연 정말일까. DEA는 정보수집에 대한 욕심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기존 정보수집 프로그램의 폐기로 타격을 입자 그해 12월 법무부에 감시프로그램을 재추진할 것을 요청하려다 포기했다. 기존과 다른 방식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마약 거래와 관련한 인물정보를 수집한 뒤 전자소환장을 통신회사에 제출하는 것으로, 간혹 명단이 수천명이나 되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과거에 비해 선별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법은 여전히 시민에 대한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한 미 수정헌법 4조에 위배되며, 특히 오바마가 지난해 1월 제시한 NSA 정보수집 개선방식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오바마 방안은 비록 대량 정보수집을 못하지만 법원의 영장만 있으면 언제든지 통신회사로부터 특정 통신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에 반대해 온 일부 의원과 인권단체는 이 같은 방식을 완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동에 나섰다. 2014년 3월 당시 미 상원 법사위원장이던 패트릭 리히 민주당 의원은 에릭 홀더 법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DEA 프로그램이 법원의 심리나 DEA 자체 감사를 받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이 프로그램이 다시 회복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USA투데이 보도 다음날인 지난 8일 DEA가 영장 없이 미국인의 국제전화 기록을 수집하는 것을 영원히 막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법원에 DE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단체의 마크 러몰드 변호사는 “미 정부가 대량 감시업무에서 손을 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소송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미국인의 자료를 대량으로 감시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점”이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USA투데이 보도는 미국 정부의 불법 정보수집의 역사가 끝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까지 거슬러가야 하는 것일까.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정권에 대해 경고했다. 오웰은 스탈린 치하의 옛 소련과 국가사회주의를 겨냥했지만, 미 정부가 <1984> 출간 2년 전인 1947년에 국가안보법을 만들어 국가 감시의 토대를 닦았다는 역사학자나 안보분석가들의 주장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