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구렁이가 창고 옆 족제비 구멍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족제비 새끼를 삼키고 배가 불룩해져 뜰로 기어 나온다. 암컷 족제비와 수컷 족제비가 깜짝 놀라 순식간에 구렁이 앞에 오더니 번갈아가며 땅을 파는데, 그 구덩이는 깊숙하고 길쭉하니 대나무 홈통 같다.그런 다음 구덩이의 양 끝을 제 몸길이에 맞춰 수직으로 파내려가더니, 암컷과 수컷이 그 속에 숨는다. 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서 족제비가 파놓은 구멍으로 들어간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틈이 없어 딱 들어맞는다. 얼마 뒤, 구렁이는 움직일 수도 없고 배를 뒤집을 수도 없어 드디어 죽고 만다. 아마도 두 마리의 족제비가 몰래 깨문 것 같다. 마침내 족제비가 구멍에서 나와 구렁이의 배를 가른다. 족제비 새끼 네 마리가 죽어 있는 듯하나 몸은 온전하다. 새끼들을 꺼내어 깨끗한 땅에 눕히고 번갈아 가며 콩잎과 닭의장풀을 물어 나른다. 먼저 새끼들 밑에 콩잎을 깔고, 위에다 닭의장풀을 두툼하게 덮는다. 그러고 나서 암컷과 수컷이 잎사귀 속에 주둥이를 묻고 기운을 불어넣자 네 마리의 새끼들이 꿈틀꿈틀 살아난다.’
‘족제비 한 마리가 머리와 꼬리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흙을 칠한다. 그런 뒤 앞의 두 발을 오므리고 썩은 말뚝 모양으로 밭둑에 사람처럼 서 있는다. 다른 족제비 한 마리가 눈을 감고 숨을 참은 채 그 아래 뻣뻣하게 눕는다. 까치가 와서 누워 있는 족제비를 엿보고는 죽은 줄 알고 한 번 쪼아 본다. 누워 있던 족제비가 꿈틀하면 까치는 의심이 생겨 썩은 말뚝같이 서 있는 족제비 위로 올라앉는다. 그때 말뚝같이 서 있던 놈이 입을 벌려 까치의 발을 꽉 깨문다. 까치는 비로소 족제비 머리에 앉은 것을 알게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저서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소개한 ‘족제비의 지혜’에 관한 글들이다. 이덕무는 “아 얼마나 지혜롭고 의롭고 자애로운가! 사람이 이 세 가지를 갖추었다면 선인(善人)이라 할 만하다”고 썼다. 또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라며 무릎을 친다. 의로운 족제비의 지혜.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200여년이 지난 한국 사회에는 갑질충, 맘충, 노인충, 흡연충, 급식충, 자전거충이니 하는 온갖 벌레가 넘쳐난다. 특정세대나 계층에 대한 불쾌감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이 같은 용어는 관용과 배려가 없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족제비는커녕 벌레만도 못한 게 인간이라는 말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올 법하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충’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병폐를 다룬 것은 족제비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족을 달자면, 벌레가 나쁜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이덕무는 일찍이 이를 보여줬다. 그는 스스로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내가 나를 벗하는 사람)’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책벌레’이자 ‘공부벌레’였던 것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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