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원형감옥을 고안했다. ‘파놉티콘(panopticon)’이다. ‘모두(pan)’와 ‘본다(opticon)’는 그리스어를 합성한 것이다. 벤담이 그린 것은 원형감옥 중앙에 감시탑이 있고, 감시자는 그 탑 안에서 전체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감시자가 있는 탑 안은 어둡고, 죄수들이 갇혀 있는 방은 환하게 돼 있어 죄수들은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낳기 위한 이 같은 구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를 낳은 벤담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벤담의 계획은 당시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감시 개념은 건축을 넘어 철학적 고찰 대상으로 확장됐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인 ‘빅 브라더(Big Brother)’ 시대의 도래를 경고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감시시스템이 감옥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작동되고 있다면서 권력 행사 방식으로서의 파놉티콘을 설명했다.
파놉티콘이나 빅 브라더는 감시사회의 위험을 상징하고 경고한다. 감시사회를 가능하게 한 것은 카메라의 발명이었다. 2013년 11월 정보수집 천국이 된 세상과 그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올해 해변가에는 상어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추어 사진가다.” 이 글은 코닥 휴대용 카메라의 등장이 낳은 1890년 당시 사회의 풍경을 그린 당시 신문기사 내용이다. 정보수집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가져올 부작용을 120여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감시사회의 위험이라고 할 때 대개는 국가권력의 시민감시를 떠올린다. 대표 사례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에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인 불법 정보수집 사건이다. 이보다 파놉티콘과 빅 브라더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더 잘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하지만 최근 사회문제가 된 한 워터파크 여성 탈의실에서 촬영된 몰래카메라 영상의 유통은 개인에 의한 감시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을 보여줬다. 관음증을 넘어 정보를 사고팔 목적으로 거래되는 이 같은 행위는 정보수집 기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휴대용 카메라에서 시작한 정보수집 기기는 CCTV, 블랙박스를 거쳐 구글 글래스를 비롯한 웨어러블 기기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기가 진화할수록 국가나 개인 모두 훔쳐보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무표정한 시선 뒤에 감춰진 기기로 언제든 타인의 삶을 훔쳐볼 수 있는 시대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의 경계조차 모호해진 지금, 누군가가 나를 감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사생활 침해 문제를 넘어 상호 불신을 심화시켜 사회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다. 타인의 타인에 대한 불법감시를 막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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