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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18]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리고(2015.11.24ㅣ주간경향 1152호)

<맹자> 첫머리는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왕이 말한다. “선생께서는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는데, 분명히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겠지요?” 맹자가 답한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로움을 말하십니까(王何必曰利). 오로지 어짊과 의로움이 있을 따름입니다(亦有仁義而已矣).” 맹자의 말은 이어진다. 요약하면 왕이 이익을 추구하면 대부와 백성들도 차례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이(利)는 사익이고, 의(義)는 공익이다. 군주는 힘에 의한 패도정치 대신 왕도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맹자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2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왕도정치가 아닌 패도정치가 판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정치권을 보자. 청와대와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에 안달이 났다. 반대세력은 ‘적화통일론자’ ‘비국민’ ‘혼이 비정상인 사람’으로 낙인 찍으며 국민을 편가르고, 정치혐오를 부추긴다. 새누리당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박근혜 눈도장 찍기’에 여념이 없다. 친박·비박 논쟁에 이은 진박·가박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새천년민주연합도 총선 공천 룰과 지도체제 개편을 두고 집안싸움이 한창이다. 그러면서도 두 당은 선거구 획정 시한을 넘기고 예산조정소위의 위원을 증원하는 등 제 밥그릇 챙기기만은 놓치지 않는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민생은 더 이상 암울해질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의 상위 10%는 전체 부의 66%를 장악하고 있다. 반면 하위 50%가 가진 부는 2%에 불과하다. 월 200만원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약 절반인 49.5%나 된다. 국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체감 경제고통지수는 22포인트로, 정부의 실적 경제고통지수 8.5포인트보다 13.5포인트나 높다. 말하자면 소득불균형이 심화돼 계층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밀려난 장년층은 살기 위해 치킨집이나 빵집을 하는 자영업자가 돼 보지만, 그마저도 80%는 1년 안에 망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쉬운 해고 도입 추진으로 직장인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에 떠는 파리 목숨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곳간에 쌓아둔 1000조원이나 되는 돈을 임금인상이나 청년일자리 마련에 투입하라는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시쳇말로 서민들은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리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권력자나 정치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옳고, 모두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떠들어댄다. 이들에게 맹자의 왕도정치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라’는 공자의 말은 ‘개 발에 편자’일 뿐이다. 개인의 사익 추구와 보신주의는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사용하면 나라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더욱이 자기 모가지가 붙어 있는 것에만 안도하는 시민이 많을수록 위정자의 사익추구 욕구는 커지게 마련이다.

<조찬제 helpcho65@kyung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