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이 있다. 한 명은 갓 태어났고, 한 명은 환갑을 훌쩍 넘겼다. 두 딸 모두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점이 닮았다. 덕분에 갓난아기의 앞날은 창창하고, 다른 한 명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태평양 양편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큼 두 딸의 차이는 크다. 가장 큰 것은 두 딸을 바라보는 내 감정이다. 한 명에게서는 희망과 감동이, 다른 한 명에게서는 절망과 분노가 느껴진다.
갓난아기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세상에 나왔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출생 선물은 ‘통 큰 기부’였다. 기부액은 무려 약 52조원이나 된다. 그가 직접 받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자산의 99%를 일생 동안 기부하겠다고 온 세계에 약속했다. 선물에는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딸과 같은 미래세대의 모든 아이들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이름은 맥스(맥시마)다. 아버지는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이고, 어머니는 소아과 의사 프리실라 챈이다.
환갑이 지난 딸은 ‘온실 속의 화초’였다. 아버지는 그가 열 살 무렵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덕분에 젊은 시절 18년을 궁궐과 같은 곳에서 보냈다. 그 사이에 부모를 총탄에 잃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이를 딛고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이 됐다. 남과 다른 출신 배경과 몸에 밴 권력의지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장 큰 유산이었다. 이 딸의 이름은 박근혜다. 아버지는 박정희, 어머니는 육영수다.
나는 맥스가 한없이 부럽다. 내가 나의 딸에게 바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아버지를 뒀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맥스를 위해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은 맥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맥스와 함께 살아갈 미래세대를 위한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맥스가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맥스는 모두가 꿈꿔 온 세상에서 살 확률이 높지 않을까. 흙수저와 금수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성취할 수 있고, 서로 보듬고 살아갈 세상 말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없이 안타깝다. 내가 꿈에서조차도 바라지 않았던 아버지를 둔 탓이다. 박정희의 죽음은 중3이던 나에게 아버지를 잃은 자식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딸에게는 불행의 씨앗이었다. 뼛속까지 박힌 타인에 대한 불신과 자기확신으로 대통령이 된 그 딸은 국민을 편가른다. 국정 교과서를 강행하고 시위하는 국민을 테러집단으로 몰아붙인다. 기성세대를 제물 삼아 청년들을 유혹하며 세대갈등을 부추긴다. 청년들은 그가 이끄는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외국 언론들은 그런 그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른다. 아버지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잘못된 유산을 이어받아 옛날로 회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맥스와 박근혜, 그리고 저커버그와 박정희. 내 딸이 어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이름들을 되뇌며 내 딸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아버지가 될지 곱씹고 있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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