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이름만 들으면 1980년대 ‘헤이’ ‘나탈리’라는 노래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헷갈릴 수 있겠다. 세련된 훈남 스타일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는 달리 그는 말총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새가 특징이다. 외신을 보면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다. 가수는 아니지만 최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오랜 긴축으로 실의에 빠진 스페인 서민들에게 희망가를 불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창당 1년 11개월 만에 치러진 첫 총선에서 제3당이 되는 역사를 썼다. 포데모스는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는 말 그대로 해냈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거리의 목소리였다. 2011년 정부의 과도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인디그나도스(분노하는 사람들) 운동이 시작이었다. 긴축 반대의 목소리는 2014년 1월 포데모스 창당으로 이어졌다. 이글레시아스의 뼛속에는 노동자 DNA가 새겨져 있다. 그의 부모가 스페인 사회주의의 아버지이자 사회노동당 창설자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세에서 그의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서방 주류 언론은 그런 그를 ‘시리자’ 돌풍을 일으킨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에 비유했다. 치프라스라는 이름은 과격 좌파 이미지나 다름없다. 초기 그의 사상은 거칠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뛰어든 이상 그는 이미지를 바꿔야 했다. 선동가 이미지에서 벗어난 말투와 온건정책으로 서민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앞날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지만 스페인 서민들은 이글레시아스로부터 희망을 봤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이글레시아스가 스페인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이레 전에 탈당했다. 20대 총선을 정확히 네 달 앞둔 정치권은 ‘안철수 블랙홀’에 빠졌다. 사람과 인터넷의 병을 고치는 의사로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희망의 메시아처럼 다가왔다. 2012년 대선 전 그는 ‘안철수 현상’을 일으켰다. 그는 ‘새정치’와 ‘혁신’을 이야기했고, 지지자들은 호응했다. 하지만 그는 야권 단합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에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정치인 안철수로서 선택한 길이었다. 또다시 새정치와 혁신을 내세웠지만 그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터였다. 그는 스스로 희망을 거둬들였고, 그의 앞날은 안갯속이다.
안철수 탈당과 신당 창당 파동으로 한국 정치는 더 깊은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할까. 아니면 새누리당의 과반수 의석은 깨어질 수 있을까. 정치권에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걸까. 절망과 환멸이 우리 어깨를 짓누른 지 이미 오래다.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2016년을 밝히는 해는 떠오른다. 한 줄기 희망조차 건져올릴 수 없었던 두 해를 보내고 총선의 해를 맞이한 2016년, 우리는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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