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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30]샌더스가 만드는 희망의 길(2016.02.23ㅣ주간경향 1164호)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탓으로 가라앉았던 설 연휴 분위기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진 것은 미국 대선 관련 소식이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이자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는 9일(현지시간) 치러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큰 표 차이(21.7%포인트)로 이겼다. 0.3%포인트 차의 아이오와 코커스 석패를 만회하고 대선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승리였다. 물론 몇 시간 후 한국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맞불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지만 말이다.

샌더스의 압승이 예견된 까닭에 내 관심사는 그 뒤에 나온 뉴스였다. 거기서 샌더스 바람이 돌풍에 그치지 않고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거자금 모금 관련 소식이었다. 샌더스 캠프 측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끝난 직후부터 18시간 동안 52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모금액은 지난 1월 샌더스 모금액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샌더스가 지난 1월에 모은 선거자금은 2000만 달러가 조금 넘었다. 그 덕분에 한 달 기준으로 처음 클린턴(1500만 달러)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선거자금 모금액의 급격한 증가 소식은 샌더스에게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승리보다도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샌더스 돌풍을 지켜보면서 그 기세가 시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 역대 대선 승리의 해법이 돈이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월스트리트의 큰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데 비해 비주류인 샌더스는 ‘풀뿌리’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 돈 부족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소멸한 사례가 여럿 있다. 2008년 대선의 공화당 경선 후보 마이크 허커비 경우가 그랬다. 그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대선후보가 된 존 매케인(4위)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선거자금 부족 때문에 그해 3월 중도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샌더스는 달랐다. 그의 캠프는 프라이머리 직전에 홈페이지를 선거자금 모금 촉구 사이트로 바꿨다. 그만큼 선거자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리한 그는 지지자들에게 당당했다. “난 오늘 밤과 내일 뉴욕에서 선거자금을 모을 예정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는 가지 않겠다.”

선거자금 모금액 하나로 희망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샌더스 앞에는 시험대가 많다. 향후 진퇴를 가늠할 ‘슈퍼 화요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 슈퍼 화요일은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2008년과는 다르다. 그해 슈퍼 화요일에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가진 대의원의 52%를 뽑았다. 847명을 얻은 오바마가 834명에 그친 클린턴 후보보다 대선후보에 한 발 앞서나갔다. 올해 슈퍼 화요일은 3개(3월 1일과 15일, 6월 7일)로 나눠진 데다 뽑는 대의원 수도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 결국은 버틸 힘이 필요하다. 바로 선거자금이다.

중국 사상가 루쉰은 “희망이란 땅 위의 길과 같다”고 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되듯 희망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샌더스가 희망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