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거짓말한다.’ 미국 언론인 I F 스톤이 한 말이다. 언론인의 사명을 함축하고 있어 늘 가슴에 새겨 왔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에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새삼 이 말이 떠올랐다. 정부의 대응논리가 거짓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불법행위를 옹호하려다 보니 또 다른 거짓말을 하거나 억측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곤궁한 처지. 박근혜 정부가 그렇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 임금 70% 핵개발 전용’ 발언을 보자. 홍 장관은 지난 12일 핵무기 개발 전용 의혹과 관련해 “여러 관련 자료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은 그게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2094호 위반(허위 보고)이라고 지적했다. 대북결의안 2094호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도움이 되는 금융거래와 현금 제공을 금지하고 관련국에 제재 이행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홍 장관은 그 후 “(자료) 공개는 어렵다”(14일), “확증은 없다” “와전된 게 있다”(15일)며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18일 “여러 경로를 파악한 바”라며 앞의 해명을 뒤집고 애초 발언을 재강조했다. “학자적 양심” 운운하면서 오히려 당당했다. 무엇이 홍 장관의 말을 바꾸게 했을까. 그의 속을 알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홍 장관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밝힌 근거는 남북교류협력법 4항과 5항이다. 4항은 ‘통일부 장관은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협력사업의 정지를 명하거나 그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5항은 ‘정지를 명하거나 승인을 취소하려면 청문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홍 장관은 4항에 따라 조치를 취했지만 5항의 청문 절차는 밟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행위다.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의 통치행위’ 발언도 마찬가지다. 황 총리는 18일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위법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헌법 76조 1항은 대통령이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한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제가 있다.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76조 1항), 그리고 ‘처분과 명령을 한 때에는 국회에 보고하여 승인을 얻어야 한다’(76조 3항). 정부가 이 조치를 취했을 때 국회는 개회 중이었고, 정부는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은 불법행위인 셈이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 거짓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낳은 비극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 안위와 관련해 국민을 설득하려면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야 한다. 정부의 거짓논리로 되돌릴 수 없는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의 비극일 뿐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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