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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32]불신의 DNA를 믿음의 DNA로(2016.03.08ㅣ주간경향 1166호)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5일로 취임 3주년을 맞았다. 질문 하나를 던져 보자. 박 대통령 집권 3년을 집약하는 용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청와대가 꼽은 용어는 ‘국민’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취임 3주년을 앞두고 3년간 공개발언 1342건을 빅데이터로 분석했다. 그 결과 국민, 대한민국, 경제, 발전 등의 순으로 나왔단다. 국민은 5029회, 대한민국은 4412회, 경제는 4203회 언급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과 대한민국은 주로 관용적 의미로 사용된 만큼 실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경제로 봐야 한다”는 각주를 달았지만 입만 열면 국민과 국가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애민과 애국은 감출 수 없을 터이다.

청와대의 답변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정확히 가릴 방법은 물론 없다.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일을 하나씩 되짚어 보는 일이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협상, 노동개혁,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개성공단 중단, 사드 도입 협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청와대가 강조했듯 경제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쏟기도 했다. 이런 사건에서 읽을 수 있는 단어들은 무엇일까. 무능, 불신, 배신, 졸속, 무모함, 독단, 단호함, 일방주의, 애국심 등이다. 긍정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집권 3년을 함축하는 하나의 단어로 ‘배신’을 꼽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 3년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모습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배신은 불신에서 왔다. 박 대통령의 DNA에는 불신이 새겨져 있다. 박 대통령은 불운하게 끝난 대통령의 딸 시절, 침묵기, 정치입문기, 그리고 대통령 당선 이후까지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불신의 삶 탓인지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남 탓만 한다. 박 대통령의 진심 속에는 국민이 없다. 그에게 국민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일 뿐이다. 청와대가 인정했듯 박 대통령에게 국민은 관용(慣用)적 의미다. 습관적으로 쓰는 수식어라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싫어하는 절반의 국민들의 DNA 속에도 불신이 각인돼 있다. 불행하게도 그 불신의 씨앗을 뿌린 이는 박 대통령이다.

불신의 국정운영이 낳은 결과는 좋을 수가 없다. 박 대통령 집권 3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지식인들은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나치 시대나 유신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저성장과 장기불황에 따른 나머지 대중의 절망을 이용해 공포 마케팅을 확산시킨 결과다.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야당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보고 책상을 쳤다는 박 대통령 마음 속에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을 터이다.

“좋은 정권은 애민을 실천하고 나쁜 정권은 애국하라고 국민을 닦달한다”며 “어느 좋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기에 앞서 효도하라고 매를 들던가?”라고 한 남재일 교수의 지적(<경향신문> 2월 26일자 칼럼)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은 2년 동안 불신과 배신보다는 믿음과 포용을 베푸는 대통령의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