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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33]날개 단 국정원(2016.03.15ㅣ주간경향 1167호)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으로 야권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달 하순.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민주당의 대선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가 40여년 전 ‘중앙정보국(CIA) 해체’를 언급한 사실을 보도했다. 1974년 10월 샌더스가 CIA를 “사라져야 할 위험한 기관”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샌더스는 반전단체 자유연합당 후보로 버몬트주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고 있었다. <폴리티코>의 보도 계기는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 간 최근 토론이었다. 샌더스는 토론에서 1953년 CIA가 이란의 모하메드 모사데크 정권 전복 쿠데타를 지원한 사실을 언급했다.

<폴리티코>는 샌더스 발언에 대한 클린턴 후보 측의 반응도 실었다. “그(샌더스)가 최고사령관 자격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폴리티코> 보도가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후보에 대한 과거 들춰내기식 보도는 선거에서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일었다. 기자는 샌더스 발언 정보를 어떻게 얻었을까. 혹시 클린턴 측에서 흘린 게 아닐까. 궁금했지만 이 같은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CIA 해체를 주장하는 후보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과 미국에서도 정보기관 개혁 문제가 골칫거리라는 점에 끌렸다.

역대 민주당 대통령 중 ‘CIA 해체’를 주장한 이는 2명이다. 존 F 케네디와 해리 트루먼. 케네디는 1961년 쿠바의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하자 다음날 CIA가 쿠바 망명자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쿠바를 침공한 사실(피그만 침공)을 알고 CIA 해체를 언급했다. “CIA를 1000 조각을 내 바람에 날려버리자.” 1947년 CIA 창설을 주도한 트루먼은 1963년 케네디 암살 뒤 언론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CIA가 평화기에 첩보영화 같은 작전을 벌일 줄 몰랐다.… 따라서 CIA가 대통령의 정보기관이라는 원래 임무를 회복하고,… 공작활동은 종결되거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적절히 활용되기를 바란다.”

공화당 대통령 시절에는 CIA 역할이 제한되기도 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계기였다. 미 상원은 1975년 CIA 개혁을 위해 ‘처치 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 결과 CIA의 외국 지도자 암살 시도, 외국 정부 전복 비밀공작, 시민 정치활동 정보수집 사실이 드러났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이듬해 행정명령 11905호로 CIA의 요인 암살공작을 중단시켰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CIA는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추궁당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CIA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DNI) 직을 신설했다.

샌더스, 케네디, 트루먼의 ‘CIA 해체’ 언급의 본질은 무엇일까. CIA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CIA 해체 언급이 ‘금기어’는 아닐 터이다. 하지만 어느 행정부도 CIA를 제어하지 못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정보기관은 날개를 달았다. 2013년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정보수집 폭로에서 보듯 정보기관은 ‘빅 브라더’가 됐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국가정보원에 날개를 달아준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조찬제 편집장 heplcho65@kyung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