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미국 재무부는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2020년에 여성으로 바꿀 것이라고 발표했다. 찬반 논란과 함께 누가 미국의 첫 지폐 속 여성이 될지 관심이 고조됐다.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10개월 뒤인 2016년 4월 재무부는 10달러 대신 20달러 인물을 바꾸기로 했다. 20달러 인물은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이다. 노예 소유주 논란으로 옛날부터 교체 대상 1호였다. 지폐 속 첫 여성 타이틀은 터브먼에게 돌아갔다. 잭슨은 퇴출을 면하고 뒷면으로 쫓겨난다. 첫 흑인 대통령 시대를 맞아 첫 흑인 지폐 인물이 탄생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이 계획을 번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지폐에 등장하는 여성을 진보의 척도로 삼는다면 미국은 후진국이다. 뉴질랜드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 케이트 셰퍼드를, 인도네시아는 독립운동가 디엔을 지폐 인물로 내세웠다. 내전 중인 시리아조차 이미 고대 로마에 맞섰던 제노비아 여왕을 지폐 인물로 삼고 있다. 캐나다도 내년에 흑인 민권운동가 비올라 데즈먼드 초상을 넣은 지폐를 발행한다.
남녀평등 원칙에 가장 충실한 나라는 호주다. 앞뒷면 한쪽에 남성이 등장하면 반대면은 반드시 여성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사회개혁가이자 작가인 메리 길모어, 19세기 탐험가이자 사업가인 메리 라이베이, 첫 여성의원 에디트 코완, 오페라 가수 넬리 멜바가 등장한다. 스웨덴도 여성 친화적이다. 최초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셀마 라게를뢰프, 19세기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 등이 그들이다.
영국은 특이하다. 모든 단위의 파운드 앞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몫이다. 뒷면에는 유명인들이 등장하는데, 여성은 3명뿐이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과 19세기 사회개혁가 엘리자베스 프라이,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다. 오스틴의 초상이 새겨진 새 10파운드 지폐가 그의 200주기인 18일 공개됐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구절 “독서만 한 즐거움은 어디에도 없어!”도 삽입됐다. 이보다 더 좋은 명예는 없을 것이다.
'이무기가 쓴 칼럼 >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미·러 외교전쟁(170801) (0) | 2017.07.31 |
---|---|
[여적]트럼프의 '셀프 사면'(170724) (0) | 2017.07.23 |
[여적]룰라의 몰락(170714) (0) | 2017.07.14 |
[여적]6차 대량멸종(170712) (0) | 2017.07.11 |
[여적]강한 남자 속의 메르켈(170708) (0) | 2017.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