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러시아에서 정부의 탈세를 조사하다 당국에 체포돼 감금된 변호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년 불법감금 시한이 끝나기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그의 이름은 세르게이 마그니츠키로, 37세였다. 마그니츠키의 감금과 죽음으로 러시아 정부의 탈세와 인권탄압 실태는 만방에 드러났다. 마그니츠키는 러시아 부패에 저항하다 숨진 상징으로 떠올랐다. 3년 뒤인 2012년 미 의회는 마그니츠키를 기리기 위해 러시아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법안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해 12월 발효된 ‘마그니츠키 법안’은 러시아의 인권침해 사범의 입국 금지 등을 담고 있다. 러시아는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며 맞불 조치를 취했다. 미국인의 러시아 아동 입양을 금지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1990년 냉전 종식 이후 미·러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 중 하나다. 미·러관계는 냉전 종식 후에도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긴장의 연속이었다. 최악의 사건은 우크라이나 사태다.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혼란상을 틈타 군대를 동원해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이후 양국 관계는 신냉전의 도래라고 불릴 만큼 악화됐다. 미국은 지난해 말까지 이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해 6차례 제재 조치를 취했다. 급기야 지난해 미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의 선거 개입 사건이 터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러시아 게이트’다. 오바마 대통령은 12월 말 이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외교관 추방 등의 제재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이젠 러시아가 보복의 칼을 빼들었다. 지난 28일 미 의회가 러시아 추가 제재안을 통과시키자 러시아가 맞불로 미 외교관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틀 뒤 러시아 주재 미 외교관 및 직원 중 755명을 9월1일까지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숫자다. 예상 밖의 철퇴를 맞은 미 정부는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의 조치가 러시아 게이트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화당·트럼프의 국내정치용인지,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시아 외교 정책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러시아의 대응도 외교적 제스처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양국이 강경 일변도로 갈수록 신냉전의 그림자는 짙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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