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의 후계자로 불린다. 흑백인종 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온몸을 바쳐온 인연 때문이다. 주마는 만델라가 만든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17살 때 가입했고, 만델라가 정치범으로 27년을 보낸 로벤 섬 수용소에서 함께 복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마는 여로모로 만델라와 대비된다. 남아공의 새 시대를 연 국부 만델라는 ‘마디바’(존경하는 어른)로 추앙받는다. 반면 주마는 부패와 무능을 상징한다. 집권 8년이 지난 그에게는 ‘부패의 독씨앗’ ‘남아공 최고의 부패 인물’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2013년 12월10일, 닷새 전 타계한 만델라의 영결식 때 에피소드다. 조문 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민들로부터 록스타 같은 환영을 받았다. 반면 추도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주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야유와 조롱이었다.
그래도 생전 만델라는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2005년 6월 주마가 부패에 연루돼 부통령에서 경질되고, 검찰에 기소될 위험에 처했을 때 일이다. 만델라는 그에게 100만랜드(당시 약 8만파운드)라는 거액을 지원했다. 당시 주마는 예금보다 대출이 40만랜드 이상 초과한 상황이었다. 199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집권 ANC의 부패에 노심초사해 온 만델라였다. 그런 그가 거액을 내놓은 것은 주마가 부패를 깨끗이 털어내고 재기하길 바라는 심정에서였다. 주마는 2년여 뒤인 2007년 12월 ANC 의장이 되고, 그로부터 1년 반 뒤에는 4대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주마는 만델라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지 못했다. 사저를 개·보수하는 데 국고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은 사실이 드러나고, 인도 출신의 굽타 가문과의 유착 의혹이 터지면서 하야 요구가 빗발쳤다. 넬슨 만델라 재단도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지난 8일 사상 처음 비밀투표로 진행된 불신임투표를 비롯해 8차례의 정치적 위기에서도 오뚝이처럼 살아남았다. 언론은 그런 그를 불사조에 빗댔다. 치욕과 수치의 대명사인 그에게 불사조 호칭은 가당치도 않다. 그는 살아나기는 했지만 이미 여러번 죽은 존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불사조는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 있는 만델라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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