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21세 백인 청년이 흑인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흑인 9명이 사망했다. 여느 총격사건과 달리 이 사건의 파장은 컸다. 범인은 백인우월주의자였다. 그는 인종 전쟁을 시작할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이 사건은 ‘미국판 역사 바로 세우기’에 불을 댕겼다. 남북전쟁의 유산인 남부연합기 퇴출 운동이 확산됐고, 남부연합군(남군) 장군들의 동상 철거로까지 번졌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떠받드는 인종주의의 상징물이라는 이유에서다.
퇴출 대상 중 한 명이 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리다. 미 합중국 연방군(북군) 총사령관을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과 함께 남북전쟁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미 육사를 졸업한 리는 당초 모든 남부 주의 연방 탈퇴와 노예제도에 관심이 없었다. 고향 버지니아주가 남부연합에 가담하자 북군에서 퇴역한 뒤 남군에 참가해 군사령관이 됐다. 결국 1865년 4월9일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한다. 남북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5월9일)되기 꼭 한 달 전이다. 리는 패장이었지만 남부뿐만 아니라 북부에서도 존경받았다. 그의 기개와 의무에 대한 헌신, 군사전술 등이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와 샬러츠빌,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텍사스주 댈러스와 오스틴,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등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설치된 그의 동상은 그 명성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19일, 뉴올리언스에 있는 리 장군의 동상이 처음으로 철거됐다. 1884년 건립된 그의 첫 동상이었다. 찰스턴 총격사건 이후 철거키로 한 약속에 따른 것이다. 찬반 논란 속에서도 철거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될 만큼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샬러츠빌의 동상 철거는 그렇지 못했다. 샬러츠빌 시의회는 지난 4월 리 장군 동상 철거 안을 가결했다. 다음달 법원은 동상 철거를 6개월간 연기하라고 판결했다. 그 후 찬반론자들 간 집회가 잇따르다 지난 12일 유혈충돌로 번져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주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준동으로 남북전쟁의 영웅이 인종주의의 상징이 되는 일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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