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9월11일 칠레에서는 사회주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는 아옌데와 그의 인민연합을 지지한 지식인들을 무더기로 경기장으로 연행했다. 그중에는 문화예술운동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의 기수인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1932~1973)도 있었다. 고문과 처형이 시작되자 하라는 저항하기 위해 기타를 치며 인민연합 찬가 ‘벤세레모스(승리)’를 불렀다. 화가 난 군인들이 기타를 빼앗았다. “노래할 테면 해봐!” 협박당한 하라는 손뼉을 치며 계속 노래했다. 군인은 그의 팔을 부러뜨리고 총 개머리판으로 손가락을 짓이겼다. 하라는 그래도 일어나서 노래하려 했다. 그는 무참히 살해됐다. 하라는 불의에 죽음으로 항거한 예술가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소련의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항거에는 반전이 있다. 대표작 ‘교향곡 5번’은 스탈린 정권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은 그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춰 작곡한 것이다. 1937년 11월21일 소련혁명 20년 기념일에 초연된 이 교향곡은 대성공을 거두고 쇼스타코비치는 당의 신뢰를 회복했다. 반전은 그의 사후인 1979년에 일어났다. 망명 소련 음악학자 솔로몬 볼로코프는 쇼스타코비치가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쓴 <증언>에서 이 교향곡에 표현된 즐거움은 ‘강요된 즐거움’이며 ‘위협 속에 만들어진 환희’라고 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은 “외적 현실에 대한 타협과 내적 진실을 통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했다.
세계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기적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음악가다. 그가 베네수엘라 반정부 투쟁의 상징이 됐다. 두다멜은 21일 다음달 미국 순회공연의 무산 소식을 전하며 “더 나은 베네수엘라를 위한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친정부 음악가를 반정부 인사로 돌아서게 한 계기는 지난 5월 엘 시스테마 단원이 시위 중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었다. 최근 반정부 시위 중 구금됐다 풀려난 바이올리니스트 석방에 관여하기도 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정치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지만 윤리의식을 갖고 행동해야지 자신을 기만하면 안된다”고 했다. 마두로는 음악인의 저항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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