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권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1913~2005)에게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는 ‘제2의 고향’이다. 파크스는 남부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서 태어나 몽고메리에서 성장했다. 몽고메리는 1955년 그를 시민권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어준 흑백차별 버스 보이콧 운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파크스는 1957년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곳을 떠난다. 더 이상 직업을 구할 수 없었는 데다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해 말 남동생이 있는 디트로이트에 온 뒤 2005년 눈을 감을 때까지 48년간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않았다.
파크스가 디트로이트에서 처음 정착한 곳은 남동생 집이었다. 파크스의 ‘디트로이트에서의 삶’의 초기 흔적이 남아 있는 그 집은 그의 사후 얄궂은 운명에 놓인다. 2008년 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버려진 그 집이 철거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하지만 파크스의 생질 리아 매콜리와 독일 거주 미국 예술가 라이언 멘도사 덕분에 철거 위기를 모면한다. 매콜리는 2014년 11월 500달러에 집을 산다. 그 후 집을 보존할 후원자를 찾았는데, 바로 멘도사였다. 멘도사는 당시 예술작업의 일환으로 디트로이트 철거 주택을 베를린에 재건하는 작업 중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파는 등 비용 13만여달러를 마련한 그는 지난해 집의 전면부를 해체한 뒤 베를린으로 옮겨 6개월간 작업한 끝에 지난 4월 복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태어난 로자 파크스의 옛집은 베를린의 새 명물이 됐다.
하지만 애당초 멘도사는 파크스의 옛집이 있을 곳은 베를린이 아닌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근 미국 이전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샬러츠빌 유혈사태로 재점화된 인종갈등이 계기가 됐다. 그는 디트로이트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노예제도 당시 기념물”이라면서 “안티테제가 될 수 있는 시민권운동 기념물은 너무나 없다”고 했다. 파크스의 유산이 인종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멘도사가 원하는 장소는 백악관이다. 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축복 속에 백악관 뜰에 복원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는 “트럼프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지금이 이를 입증할 기회” 라고 했다. 그의 바람은 실현될 수 있을까.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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