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북핵 위기를 푼 일등공신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당시 북한은 플루토늄을 재생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겠다는 카드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북한의 핵개발을 두려워한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까지 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카터는 그해 6월 전격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핵동결 약속을 받아냈다. 카터의 방북 성과는 4개월 뒤 핵활동을 중단하면 경수로 2기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제네바 합의로 빛을 발했다. 대북 협상가로서의 카터의 면모가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카터는 클린턴 행정부에 먼저 방북 의사를 전달했다. 클린턴은 체면을 잃지 않고 사태를 해결할 적임자로 보고 그의 방북을 승인했다. 공식 특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간 카터가 뜻밖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카터의 방북 성과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빛이 바랬다. 북한에 속은 미국은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며 대화를 일절 중단했다. 대북 협상가 카터의 면모는 2010년 8월 북한에 억류 중이던 미국인 석방으로 다시 부각됐다. 이듬해 4월에는 긴급 구호품을 전달하러 세 번째 방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그가 북·미관계 중재자로서 다시 목소리를 냈다. 지난 8월 양측의 비방전이 북·미대화 가능성을 없앨 수 있다고 걱정했다. 9월에는 북한의 관심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에는 평화협상을 위한 고위급 대표단의 평양 파견을 제안하는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다.
93세의 카터가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터 측은 방북 의사를 트럼프에게 전달했으나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트럼프는 지난 4월 카터에게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현재 북·미대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1994년과 달리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배제하고 있고, 자존심과 체면 탓에 서로 마주앉을 상황도 못된다. 교착상태를 깨는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 대북 접촉이다. 3차례 방북한 카터가 미 대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니면 어떠랴. 만나야 실마리를 풀 기회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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