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1953), 펜트하우스(1965)보다 출발이 늦은 허슬러(1974)를 1년 만에 유명하게 만든 이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오나시스였다. 케네디 암살 5년 뒤 그리스 부호 아리스토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클린은 파파라치의 주요 목표물이었다. 허슬러는 1975년 8월호에 나체로 일광욕을 하는 재클린의 사진을 실었다. 한 파파라초가 1971년 여름 오나시스 소유 그리스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잡지는 날개 돋친 듯 며칠 새 100만부가 팔려나갔다. 1만8000달러를 주고 사진을 입수한 이는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75)였다. 대박을 터트린 플린트는 백만장자가 됐을 뿐 아니라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2017년 사망), 펜트하우스의 밥 구초네(2010년 사망)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플린트는 외설성 논란으로 자주 소송에 휘말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잇단 소송으로 그는 ‘표현의 자유’의 수호자로 떠올랐다. 허슬러는 1983년 복음주의 목사 제리 폴웰의 첫 경험을 패러디한 광고를 실었다가 피소됐다. 5년을 끈 양측의 소송전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례를 남겼다. “수정헌법 1조는 공적 인물이 자신을 풍자하는 캐리커처나 만화 광고를 이유로 불법 행위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플린트의 삶은 1996년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 <래리 플린트>로 재조명됐다. 영화 속 플린트는 이런 말을 남긴다. “나 같은 쓰레기의 자유가 보장되면 모든 사람들의 자유도 보장될 수 있다.” 판사역 카메오로 출연한 플린트는 “영화 속 많은 장면이 쑥스럽다. 하지만 그게 내 삶인데, 어떡하겠나”라고 했다. 플린트는 1978년 허슬러 사진에 불만을 품은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플린트가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표적으로 찍었다. 플린트는 지난 15일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탄핵을 위해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면 1000만달러(약 113억원)를 주겠다는 광고를 실었다. 그는 “트럼프 탄핵은 모든 미국인의 임무”라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인 플린트는 과거에도 이라크전 반대, 성소수자 권익과 동성결혼 옹호에 앞장서왔다. 그를 표현의 자유의 영웅으로 옹호할 필요도 없지만 폄훼할 이유도 없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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