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은 미스터리 드라마 같다. 케네디는 1963년 11월22일 낮 12시30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카퍼레이드 도중 리 하비 오즈월드가 쏜 2발의 총탄을 맞아 숨졌다. 오즈월드는 이틀 뒤 교도소로 이감되기 위해 경찰서를 나오다 나이트클럽 주인 잭 루비가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됐다. 루비는 교도소 수감 중이던 1967년 1월3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케네디 암살을 조사한 워런위원회는 1964년 9월 오즈월드 단독범행이며 오즈월드는 어떠한 음모론과 무관하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음모론에 불을 댕겼을 뿐이다.
대표적인 음모론은 미 중앙정보국(CIA) 배후설, 소련과 쿠바 정부 배후설이다. CIA 배후설의 근거는 미국의 쿠바 피그만 공격(1961년) 때 CIA가 요청한 지원을 케네디가 거부해 실패한 점, CIA 예산을 감축한 점 등이다. 소련 배후설은 오즈월드가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작원이라고 의심한다. 오즈월드는 3년 가까이 소련에 살았고, 부인이 러시아인이다. 사건 직전에는 비자 문제로 멕시코 주재 소련 대사관과 접촉하기도 했다. 쿠바 배후설은 CIA의 피델 카스트로 암살 기도에 대한 보복이 핵심이다. 오즈월드가 쿠바 비자 취득을 시도한 점, 루비가 1959년 방문한 점도 엮여 있다.
그동안 많은 문건이 공개됐지만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었다. 케네디 암살 관련 기밀문서 2891건이 26일 밤 추가로 공개됐다. 예상대로 음모론을 잠재울 ‘결정적 증거’는 없어 보인다. 가디언 분석을 보면 새로 드러난 내용은 FBI가 오즈월드가 죽기 전날 암살 조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것, 카스트로가 1978년 미 하원 조사단에 쿠바는 암살과 관련 없다고 직접 밝힌 점, 소련이 암살 직후 미국의 미사일 공격으로 전쟁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했다는 점 등이다.
이렇게 기대와 달리 심심한 자료만 나온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CIA, FBI 요청에 따라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민감한 자료의 공개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미공개 문서는 6개월간 검토 후 공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군사방어나 첩보활동, 법집행, 외교활동에 저해될 경우 공개를 보류할 수 있다. 6개월 뒤 음모론이 사라질지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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